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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중국을보고세상을읽다] 양안관계와 공산당·국민당 교류

관련이슈 김진호의 중국을 보고 세상을 읽다

입력 : 2015-05-04 20:29:53 수정 : 2015-05-04 20: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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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이며, 대만은 중국의 대외정책인 ‘하나의 중국원칙’에 의해 국제 활동무대가 줄어든 중화민국의 새 명칭이다. 지리적으로 중국대륙 푸젠성(福建省) 남동부 샤먼항(夏門港) 동쪽 10여 ㎞에는 대만령 진먼다오(金門島)가 있다. 이곳은 1949년과 1958년 두 차례 전화(戰火)로 휩쓸렸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양안(兩岸)을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교류가 빈번한 지역이다.

양안이란 대만해협 서안(중국대륙)과 동안(대만섬)을 의미하는 지리적 개념이나 양안관계란 중국과 대만의 정부 입장을 고려한 개념이다. 이 양안관계는 중국 공산당 정부와 대만 국민당 정부의 관계를 의미했으나, 2000년부터 8년간 대만 야당 민진당 집권도 있어 현재는 중국 공산당 정부와 대만 집권당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국제관계학
냉전시기 대립하던 양안은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며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텄다. 중국은 대만에 ‘3통’(三通: 통상·통항·통우) 및 ‘4류’(四流: 경제·문화·체육·과학기술 교류)를 제의하며, 1980년대에는 대만의 자본주의와 군대유지 등을 포함한 고도자치권을 부여한 ‘평화통일 9개 방안’과 ‘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중국, 두 개의 체제)의 통일방식도 제안했다. 대만도 장징궈(蔣經國) 총통이 1985년 ‘대륙(중국)교역3원칙’으로 중국과의 간접무역을 인정하고, 1987년에는 중국에서 온 노병들의 고향방문도 허용했다.

그러나 중국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대만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시기 양안관계는 극단의 대치단계였고, 대만 독립을 주장하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시기에도 대만독립이라는 문제로 양안은 긴장상태를 이어갔다. ‘조화로운 세계’(和協社會)를 강조하던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대만에 대한 유연한 태도는 2008년 5월 마잉주(馬英九)가 대만총통으로 집권하면서 크게 개선됐으며, 이 시기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까지 체결하게 됐다.

내년은 대만 총통선거가 있어 중국정부는 대만에 더욱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4월 7일 자오톈린(趙天麟) 대만 민진당 중국사무부 주임이 천더중(陳德銘) 중국 해협회 회장을 만나는 순방으로 중국과 접촉했고, 같은 달 15일에는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주석이 총통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중국은 대만 독립노선을 지향해 온 민진당의 대선후보에 대해 ‘92컨센서스’(1992년 양안이 같이 하나의 중국에 속한다고 해석한 공감대)와 ‘대만독립 반대’ 입장을 지지하라고 권고했는데, 푸젠성에서 오래 근무한 시진핑은 임기중 대만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현 대만 국민당 주석 주리룬(朱立倫)은 3일 상하이 ‘제10회 양안경제무역문화포럼’에 참석해 중소기업·청년·경제무역·정보기술(IT)·문화교육 등 4가지 분야 협력회의도 했고, 베이징에서 공산당 지도자와 회담도 가졌다. 이는 분단 후 2008년 우보슝(吳伯雄) 후진타오(胡錦濤) 국공회담(國共會談) 후 7년 만의 일로 양안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예측된다.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보며 이들 국민당과 공산당 지도자의 교류가 부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김진호 단국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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