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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흐르는 부드러움… 시대를 뛰어넘은 퐁피두 센터

입력 : 2015-05-05 20:30:43 수정 : 2015-05-05 20: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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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17> 유연한 건축 # 진정한 고수들의 유연함

얼마 전 어떤 기업의 요청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 당일 장소를 서울 강남역 부근에 있는 건물로 알고 강연 시간 15분 전에 도착했다. 회사 로비에서 담당자에게 전화했는데 강연 장소는 강남역이 아니라 숭례문 앞 태평로라는 것이었다.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체할 겨를 없이 바로 태평로로 달려가기 위해 건물에서 나왔다. 그러나 서울의 교통사정을 아는 사람은 대충 짐작 하겠지만, 그곳에서 버스를 타면 50분은 족히 걸리고 바로 앞 지하철을 타더라도 정거장 수를 계산하니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도 변에 일렬로 서있는 택시 중 제일 앞에 있는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기사는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다. 나는 태평로까지 가자고 하면서, 15분 안에 가야 되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내 말에 그 택시기사는 담담한 어조로 알겠노라고 대답했는데 의례적인 이야기로 들렸다. 

지역 고유의 오두막 형태를 극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장마리 티바우 문화센터’는 하이테크적인 재료들이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표현된, 과거와 현재, 자연과 테크놀러지 같은 모든 건축적 단서들의 매혹적이고도 행복한 결합이다.
천천히 출발하여 가는 내내 크게 속도를 내거나 신호 위반을 하지도 않았으며 도로의 흐름을 따라 유유히 강남대로에서 반포대교로 방향을 잡고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반포대교를 넘고 이태원을 지나고 3호 터널을 앞에 두고는 “터널이 막힐 것 같은데…” 하며 남산으로 올라갔다. 소월길을 지나고 숭례문까지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거짓말처럼 딱 15분이 걸렸다.

나는 약간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정확한 시간에 강연장에 도착했고, 건물 안에서 이동하느라 몇 분 늦어진 것 외에는 큰 무리 없이 순조롭게 강연을 할 수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아무리 곱씹어 봐도, 그 시간이 러시아워가 아니었다지만 강남역에서 태평로까지 15분에 도착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히는 도로에서 그렇게 물 흘러가듯 부드럽고 정확하게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택시기사가 그 방면에서는 상당한 고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오랜 시간 연마하여 얻게 된 ‘유연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의 유연함이란 아마도 무리하게 힘을 쓰지 않고 상황에 부드럽게 대처하는 능력일 것이다. 힘을 쓰지 않기, 혹은 힘을 빼기. 인생에서 제일 힘든 일이 문제를 대할 때 힘을 빼는 일일 것이다.

어떤 왜소하고 머리가 하얀 노인이 도복을 입고 여러 명의 건장한 청년·중년·장년의 사내들과 인사를 한다. 그리고 한 명씩 유도 대련을 시작한다. 상대는 모두 그보다 체격이 우람한 젊은 사람들이다. 둘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빙빙 돌며 탐색하다가, 젊은이가 노인을 잡고 넘어뜨리기 위해 다리를 건다. 그러나 노인은 마치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처럼 혹은 오뚝이처럼 넘기는 방향대로 몸의 중심을 옮겼다가 일어선다.

다시 빙빙 돌다 젊은이는 노인의 멱살을 틀어잡고 둘러메치기를 한다. 그러나 노인은 넘어가는 방향대로, 대나무처럼 몸을 휘면서 옮겼다가 다시 튕겨져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고는 상대편을 아주 가볍게 던져버린다. 그런 식으로 처음에 인사를 나누었던 사내들을 하나씩 바닥에 메친다.

그 노인이 바로 일본 유도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전설적인 유도인 미후네 규조(三船久?) 10단이다. 그는 160㎝도 채 안 되는 키에 체구도 왜소하지만, 뛰어난 유도 실력으로 신의 경지라 이르는 10단에 오른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내가 본 동영상은 1960년대에 제작된 다큐멘터리의 일부였는데, 무도인들의 대련이라기보다는 마치 사교댄스 시범을 보는 듯했다.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고 약간은 과장이 들어간 듯했지만,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겨내는 것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미후네 규조는 평소에 제자에게 자신의 재능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동작을 복기하고 생각하고 반성하며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유연성은 많은 노력 끝에 얻어진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혁신적 프로그램과 기계적 미감의 독창성으로 인해 퐁피두센터는 지금까지도 파리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사랑받고 있다.
# 이단아처럼 만들어진 퐁피두센터


건축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1980년대는 무척 흥미로운 시기이다. 20세기를 지배하던 ‘모더니즘’ 계열 건축의 열풍이 조금 수그러들며, 지나치게 깔끔하고 보편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지역색이 가미된 다양한 건축이 많이 쏟아져 나온 시기이기도 하다.

단순하고 절제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Less is more’(덜할수록 좋다)가 물러가고, ‘Less is bore’(덜할수록 따분하다)라 외치며 여러 가지 장식적인 요소들을 숨김없이 나타내는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극단적인 추상성과 왜곡된 기하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한 해체주의 건축 경향 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하이테크 건축이라 불리며 기계적 미학과 첨단의 기술을 건축에 도입하려는 흐름도 있었다. 차갑고 이성적이며 장식을 죄악시하던 모더니즘 건축의 영향에서 벗어나 하나의 ‘이즘’으로 규정되지 않는 건축이 여러 갈래로 분화해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때 등장한 많은 건물 중에 굉장히 흥미로웠던 건물이 파리 한복판, 고전적인 분위기의 도시 속에 이단아처럼 만들어졌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이다. 마치 공사용 가설물이 철거되기 전의 모습처럼 외부는 가는 철제 파이프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설비용 닥트와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등의 수직 운반 동선이 껍질을 벗겨낸 것처럼 외부에 그대로 드러나는 등 당시 파리의 분위기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형태의 건물이었다.

퐁피두센터는 프랑스 대통령 퐁피두가 파리 중심부 재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1977년에 세운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공공정보도서관, 산업디자인센터, 공연예술 공간, 문화전시 공간, 위락시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고, 각층 내부는 50m×170m의 기둥이 없는 개방공간이다. 다양한 용도를 수용할 수 있는 가변적인 공간,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외관을 구현한 미학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유지 보수적인 측면에서의 합리성을 도모한다는 아이디어 또한 새롭다. 낡으면 가장 먼저 문제를 일으키고 수시로 점검을 해야 하는 각종 설비를 아예 건물 외부에 노출시켜버린 것이다.

건립 당시 주변의 역사적인 도시 문맥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대 여론이 거셌으나, 혁신적 프로그램과 기계적 미감의 독창성으로 인해 퐁피두센터는 지금까지도 파리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사랑받고 있다.

이 건물을 구상하고 무척 심혈을 기울여 감독한 이가 바로 렌초 피아노(Renzo Piano)라는 이탈리아 건축가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라는 영국 건축가이다. 이들은 이 파격적인 건축으로 무척 유명해지고 이후 수많은 건물을 설계했는데, 특히 렌초 피아노의 건축적인 행보는 늘 놀랍다.

그는 특별한 자신의 건축관을 강조하거나 재료나 구법을 고집하지 않고 늘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구법, 그리고 자연과 지역적인 특색에 대한 고찰로 건축을 한다. 하이테크 건축의 대가이자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을 하는 건축가이며, 또한 스케치가 훌륭한, 말하자면 아주 유연한 사고를 가진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렌초 피아노 빌딩 워크숍의 제노바 사무소. 경사진 유리 지붕 아래 지형에 따른 계단식 테라스 형태로 되어 있다.
# 렌초 피아노의 유연한 건축


렌초 피아노는 1937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났으니 여든을 바라보는 노장 건축가다. 아버지가 건설업에 종사한 까닭에 일찍 건축을 접했고 역사 도시라는 배경도 그의 이력을 도왔을 것이다. 많은 건축가들이 그렇듯 그 역시 1964년 졸업 후 5년여 동안 영국과 미국을 여행하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35세에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와 함께 만든 회사에서 파리 ‘퐁피두센터’ 현상설계에 응모한 설계안이 49개국에서 제출된 681점 중에서 당선작으로 선정되어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엔지니어인 피터 라이스(Peter Rice)와 함께 작업했다. 아무리 빼어난 디자인도 실제 지어질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구조적인 작업을 기반으로 구현된 그의 건축이 동시대 다른 건축가들의 작업에 비해 좀더 ‘구조적’이고 ‘기능적’으로 여겨졌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심지어 그의 회사 이름 또한 ‘렌초 피아노 빌딩 워크숍(RPBW: Renzo Piano Building Workshop)’인데, 그의 건축에 대한 유연한 사고와 실험정신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렌초 피아노 빌딩 워크숍의 제노바 사무소는 “기계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도와주는 것이어야 하며, 공간은 위압적이지 않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축가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건물이다. 계단식 해안선을 타고 전형적인 온실 모양으로 지어진 건물은 내부 공간이 단일 볼륨으로 구성되었고, 경사진 유리 지붕 아래 지형에 따른 계단식 테라스 형태로 되어 있다. 자연 채광은 빛에 응답하는 외부 루버에 의해 조절된다.

또한 그 지역 고유의 오두막 형태를 극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장마리 티바우 문화센터’는,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군도에 위치한 뉴칼레도니아 섬의 마젠타 만과 맹그로브숲 끝단에 지어졌다. 원주민 카낙(Kanak)의 역사를 공연을 통해 볼 수 있으며, 멜라네시아와 남태평양 문화를 보여주는 회화, 조각, 공예 등 다양한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 문화센터는 프랑스로부터 뉴칼레도니아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암살된 정치지도자 장마리 티바우(Jean-Marie Tjibaou)를 기념하여, 프랑스 정부가 원주민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건립하게 된 것이다.

렌초 피아노는 카낙의 전통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원주민의 전통가옥 ‘카즈(Cases)’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키 큰 나무들에 둘러싸인 모양을 형상화하였다. 목재를 휘어 수직의 뼈대로 세운 각각 크기가 다른 열 개의 ‘테크노 오두막’은 두세 개씩 무리지어 일렬로 서 있는데,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나란히 선 건물들은 인간이 지은 건축이라기보다는 신의 손길을 탄 듯 무척 역동적이고 장엄하다. 장마리 티바우 문화센터는 가장 하이테크적인 재료들이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표현된, 과거와 현재, 자연과 테크놀러지 같은 모든 건축적 단서들의 매혹적이고도 행복한 결합이다.

다양한 분야의 영역에 늘 관심을 기울이는 렌초 피아노는 선험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항상 새롭게 작업을 하며 모든 프로젝트를 독특한 모험으로 여긴다. 기술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역사적·자연적 상황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탐구하고, 또한 모든 관계자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말하자면 그는 잘 ‘듣는’ 건축가이다.

피아노와 함께 퐁피두센터를 설계했던 리처드 로저스는 “그는 아이디어의 어떤 한 지점에서 건축에 접근하지 않는다. 그것은 땅으로부터 자라난다. 그는 내가 아는 가장 우아한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물론 개인적인 우아함도 있지만, 구조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고 평한다. 렌초 피아노를 20세기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거장으로 만들어준 건 그의 건축이 보여준 그런 유연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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