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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 ‘벌집’을 아시나요

입력 : 2015-05-07 20:55:51 수정 : 2015-05-07 20: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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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오거리’전 7월12일까지
노동자들의 삶·애환 그대로 담아
1975년 구로구 가리봉동은 서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동네였다. 1980년대 중반에는 강남 땅값에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 구로공단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리봉동 전성기’를 만든 이들의 삶은 고단했다. ‘벌집’이라 불렸던 2평 정도의 좁은 방에 3∼4명이 살았고, 화장실 하나를 수십명이 함께 썼다. 직장의 열악한 근로조건도 감내해야 했다.

그 시절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애환이 박물관 전시실로 옮겨졌다. 서울역사박물관은 7월12일까지 ‘가리봉 오거리’ 전시회를 연다. 

1970∼80년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벌집’은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애환을 증언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박물관은 전시회를 1·2부로 나눠 가리봉동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1부를 구성하는 주요 전시물은 과거 가리봉의 풍경을 만들고, 속살을 증언한다. 벌집을 재현한 전시물이 먼저 눈길을 끈다. 철거를 앞둔 지금의 한 벌집에서 떼 온 문짝을 활용했고, 남루한 책상과 옷장 등으로 내부를 꾸몄다. ‘조장 임명장’, ‘근속상’ 등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소장품도 만날 수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도 전시한다. 가발업체에서 활동했던 한 운동가의 일기, 수감 당시의 편지, 경찰의 조사기록 등은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걸어야 했던 고된 여정을 증언한다. ‘나포리다방’, ‘백양양품’ 등 지금도 상호를 이어가는 가리봉동의 명소도 재현했다.

2부는 ‘디지털산업단지’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 현재를 조명한다. 구로공단으로 불리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변화상을 만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측은 “공단이 조성되고 반세기가 지나 과거 산업화의 역군이라는 명성은 사라졌지만, 가리봉동 일대는 여전히 거대한 산업단지로 남아 있다”며 “전시회는 다양한 생활사 자료와 사진, 인터뷰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삶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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