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편완식의 화랑가 산책] “예술은 경제의 꽃” 지친 작가 세워 준 그 분이 그립습니다

관련이슈 편완식의 화랑가 산책

입력 : 2015-05-12 21:24:25 수정 : 2015-05-13 00:47:2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20년째 폐교에서 작업하고 있는 유승우 작가는 한때 낭인으로 전국을 떠돌아야 했다. 작업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붓을 손에 잡으려 해도 마음은 산지사방으로 달려갔다. 스스로 ‘마음 감옥’을 만들어야 한다는 심정에서 폐교를 찾아들었다. 스님이 토굴기도 하듯 붓과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작품이 쌓여갈수록 헛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의가 몰려 왔다.

이즈음 유 작가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을 만나게 된다. 박 회장은 그에게 “예술로 할 수 있는 것 다 해보라”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모든 것을 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힘들고 지친 유 작가에겐 엄청난 위로가 됐다. 붓을 다시 곧추 세우는 힘이 됐다. 암투병 중이던 박 회장이었지만 금호미술관 전시까지 손수 챙겨주며 창작작업을 독려했을 정도다.

박 회장은 전시 개막일 유 작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몸이 안 좋아 아무래도 개막식엔 참석치 못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박 회장은 아쉬웠는지 다음날 전시장에 아픈 몸을 이끌고 나타났다. 유 작가는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비서실의 전갈을 받고 달려 갔지만 박 회장의 차는 저만치서 떠나고 있었다. 교통체증으로 시간이 지연되면서 통증에 시달리던 박 회장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야 할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에 전시장을 둘러 본 박 회장은 “승우 그림 기가 막히게 좋다. 너무 좋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유 화백은 미술관 관계자로부터 흡족해한 박 회장의 말들을 전해들어야 했다.

유 작가는 최근 중국 금일미술관으로부터 초대전 초청장을 받아들었다. 박 회장이 생존해 있다면 누구보다도 분명 기뻐했을 내용이다. 재벌 총수로는 특이하게 경제학자 출신인 박 회장이었지만 예술의전당 사장,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문화예술계 일에는 발벗고 나섰다. 특히 불모지나 다름없던 클래식 음악분야의 영재 발굴과 지원은 독보적이었다. 이런 업적으로 한국인 최초로 몽블랑 문화재단의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오는 23일은 박 회장의 10주기 기일이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여러 이유를 들어 문화예술계 지원에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유 작가뿐 아니라 문화계가 그를 추모하는 이유다. 문화예술을 경제의 꽃으로 여겼던 박 회장이 그립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