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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재의천기누설] 오성이 밝혀주는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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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18 21:21:50 수정 : 2015-05-18 21: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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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취각으로 배달국 존재 증명
오성취귀로 고구려의 천문 과시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는 황보 승 회원이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 한 곳에 모이는 오성결집(五星結集) 기록을 배달국, 고구려, 고려 역사에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독자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아는가?

나는 2014년 3월11일자 칼럼에서 고조선의 오성결집 기록에 대해 이미 설명한 바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의 ‘무진오십년오성취루(戊辰五十年五星聚婁)’ 기록이다. 여기서 ‘무진오십년’은 고조선 건국 600주년이 되는 BC 1733년을 말하고, ‘취’는 모인다는 뜻이고 ‘루’는 동양 별자리 28수의 하나다.

즉 이 기록은 ‘BC 1733년 오성이 루 주위에 모였다’’같이 해석된다. 천문 소프트웨어를 돌려봤더니 기록보다 1년 전인 BC 1734년 7월 중순 저녁 서쪽 하늘에 오성이 실제로 늘어섰다. 오성취루(五星聚婁)로 고조선은 천문대를 가진 고대국가였음이 밝혀졌으니 더 이상 ‘단군신화’라는 말을 쓰지 않기 바란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회원들에게 옛 천문기록을 찾아내 달라고 호소해왔다. 그러던 중 올해 초 황보 승 회원이 오성결집 기록을 여러 개 발견했다고 나에게 알려왔다.

배달국의 오성결집 기록은 ‘천문류초’(天文類抄)에서 발견됐다. 이 책은 세종대왕의 명에 의해 천문학자 이순지가 옛 기록들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오성결집은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하나인 전욱 고양씨(?頊 高陽氏) 부분에 ‘일월오성개합재자(日月五星皆合在子)’같이 나와 있었다.

자료를 종합해보면 갑인(甲寅)년인 BC 2467년에 오성결집이 있어야 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천문 소프트웨어를 돌리자니 가슴이 떨렸다. 무려 4500년 전 선배 천문학자의 기록을 후배가 맞춰보고 있는 것 아닌가. 정작 BC 2467년에 오성결집이 발견되지 아니하자 숨이 막혔다. 하지만 그보다 3년 전인 BC 2470년 9월 새벽 ‘오성취각(五星聚角)’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오성이 28수 각(角) 별자리 주위에 모였던 것이다.

‘환단고기’는 삼황오제가 동이족(東夷族), 즉 배달국 사람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번 오성취각의 발견으로 삼황오제 시대는 전설이 아니라 역사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물론 배달국의 역사 또한 결코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도 저절로 입증된 셈이다. 고조선도 신화라고 하는 마당에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은 오성취루가 실제로 28수 중 루(婁)보다 성(星)에 더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 오성취성(五星聚星)이 옳다는 사실이다. 이는 4000년 전 28수가 현재와 다르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오성취루로 너무 많이 알려져서 오성취성으로 바로잡히지는 않을 것 같다. 과학사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중요한 사실은 오성결집이 실제로 일어났고 옛 기록이 옳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오성결집 기록은 김부식의 ‘삼국사’(三國史)에서 나왔다. 오성결집 기록은 고구려 차대왕 4년(서기 149년) 부분에 ‘오성취어동방(五星聚於東方)’같이 나와 있다. 천문 소프트웨어를 돌려봤더니 149년에는 오성결집이 일어나지 않았고 2년 후인 151년 8월에 게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양 별자리 28수에서 게자리를 귀(鬼)라고 하므로 오성취귀(五星聚鬼)가 되겠다.

오성취루의 경우는 약 4000년 전 일이어서 1년 오차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오성취귀의 경우는 약 2000년 전 일인데도 불구하고 오차가 2년이나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면 ‘삼국사’의 차대왕 4년은 서기 149년이 아니라 151년이란 말인가?

‘천문류초’에는 중국에 관련된 오성결집 기록들도 있다. 예를 들면, 한(漢) 원년(BC 206년)에 오성이 모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경우에도 2년 후, 즉 BC 204년에 오성결집이 일어났다. 이 무렵 천문기록이 일관되게 2년 오차가 적용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고려의 오성결집 기록은 ‘고려사’(高麗史)에서 나왔다. 이 책은 조선시대 김종서와 정인지가 편찬한 역사책이다. 정확히 ‘오성’을 언급한 기록은 찾지 못했지만 오성결집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기록들이 발견됐다.

즉 서기 1108년(예종 3년), 1226년(고종 13년), 1327년(충숙왕 14년) 기록들인데 모두 오성결집이 1년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오차가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고려 이후의 오성결집 기록들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황보 승 회원은 천문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수십 개의 오성결집을 찾아내 이 현상이 예상보다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에 상응하는 오성결집의 역사적 기록이 앞으로 여러 문헌에서 더 많이 발견될 수 있으리라 믿어지는 이유다.

예나 지금이나 오성결집은 상서로운 현상이다. 배달국의 오성취각, 고조선의 오성취루(실제로는 오성취성), 고구려의 오성취귀, 이 ‘오성결집 삼총사’는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밝혀줄 영원한 등불이 될 것이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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