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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남국(南國)의 고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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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21 18:49:15 수정 : 2015-05-21 18: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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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으로의 탈출…'때묻지 않은 순수함' 필리핀 팔라완
팔라완과 인근 무인도에서는 문명에 물들지 않은 대자연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팔라완 혼다만 판단섬의 사파이어빛 바다와 황금빛 모래사장은 도시인에게 진정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도시 속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다 어느 날 갑자기 적도의 해변으로 숨어버린 화가 폴 고갱. 그의 결정은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떠올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 이 시대에도 수많은 현대인들이 그런 탈출을 꿈꾸기 때문이다. 

회색빛 빌딩숲과 어지러운 소음 속에서 단 며칠이라도 벗어나 조용한 해변에서 은밀한 휴식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것이다. 슬프게도 현대인은 고갱처럼 진정한 ‘사라짐’의 시간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지금은 적도의 바다를 찾아도 ‘남국(南國)의 고요함’을 느낄 수 없는 까닭이다. 휴양지 속 고층호텔과 화려한 네온사인 가운데서 아쉬움을 달래야 할 뿐이다.

 

팔라완(Palawan)은 이렇게 진정한 탈출을 꿈꾸는 현대인들로부터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필리핀의 섬이다. 총 면적 1만1785㎢로 경기도보다도 넓은 섬인 팔라완은 세부나 보라카이 등 여타 필리핀 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다. 


필리핀 최서단 지역에 외따로 떨어진 지역적 한계로 개발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팔라완 주정부 차원에서 섬 하나하나의 자연을 세심하게 보전해 나갔다. 그 결과 아직까지도 천혜의 자연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석회암 절벽과 울창한 밀림 속에 숨겨진 깨끗한 해변에서 숨어서 보내는 시간들. 자연과 함께하면서 진정한 해방과 탈출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팔라완의 주도 푸에르토 프린세사(Puerto Princesa)는 그중 한국에서 접근하기 가장 수월한 곳이다. 아직 국내에 직항편은 없지만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환승해 1시간여만 더 날아가면 도착한다. 팔라완 최대 도시이지만 도심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울창한 밀림과 깨끗한 해변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중 혼다만(Honda Bay)은 짙푸른 바다와 무인도들이 펼쳐내는 절경을 간직한 곳이다. ‘깊다’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 ‘온도(hondo)’에서 유래한 혼다만은 남국의 뜨거운 햇볕 아래 새파랗게 빛나는 짙푸른 물결이 인상적이다. 이 위에 각각의 개성을 간직한 10여개의 무인도가 떠 있다. 
혼다만의 무인도 판단섬 전경. 필리핀 전통배인 ‘방카’를 이용해 갈 수 있다.

푸에르토 프린세사 도심 인근의 혼다만 선착장에서 무인도로 떠나는 배를 탈 수 있다. 필리핀 전통배 ‘방카’를 타고 40여분을 가면 가장 먼 곳인 ‘판단(Pandan) 섬’에 도착한다. 작고 앙증맞은 섬을 부드럽게 감싸는 사파이어빛 바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손에 잡힐 듯 비쳐 보이는 투명한 바닷물, 그 앞으로 깔려 있는 황금빛 백사장, 뜨거운 햇볕을 잠시 피할 수 있는 울창한 밀림까지 우리가 남국의 풍경에서 떠올려온 모든 것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현실의 모든 것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진정한 ‘사라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판단섬에서 혼다만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다른 무인도들을 놓치지 말고 들러보는 것이 좋다. 

혼다만의 무인도 카우리섬의 전경.
깨끗한 바다와 널찍한 백사장을 가진 카우리(Cowrie) 섬, 스노클링을 즐기기 좋은 스타피시(Starfish) 섬 등 각각의 섬들이 자기만의 개성을 간직하고 있다. 혼다만의 대표적인 산호지역인 ‘팜바토 리프’(Pambato Reef)’에서는 바닷속 아름다운 산호초를 감상할 수도 있다.
혼다만의 산호초 명소 팜바토 리프.

팔라완 최대의 명소인 ‘지하강(underground river)’ 인근에 위치한 사방(Sabang) 비치도 이 섬의 아름다움을 가득 품고 있는 곳이다. 

팔라완의 깨끗한 바다와 고즈넉한 해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사방 비치.
푸에르토 프린세사 도심에서 열대우림 속으로 꼬불꼬불 나 있는 도로를 자동차로 2시간이나 헤쳐가면 햇살에 반짝이는 황금빛 모래와 푸른 바다, 아름다운 석회암 산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느리게, 아주 천천히 걷기에 딱 좋은 해변이다. 인간의 흔적은 없는, 오직 대자연의 흔적밖에 없는 공간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 그때부터 비로소 도시에서 온 여행자는 남국의 은자(隱者)가 된다. 100여 년 전 문명세계를 떠난 폴 고갱이 느꼈을 법한 해방감과 행복감을 만끽하는 시간이다.

팔라완=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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