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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칼럼] 성숙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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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24 20:39:29 수정 : 2015-05-24 20: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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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다문화 수용 지수 여전히 낮아
누적된 소외감은 분노로 바뀔 수도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외국인 수는 181만 명으로 국내 총 인구의 3.5% 이상이다. 3년 사이에 무려 40.3% 증가한 수치다.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급증하면서 이제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가 돼 가고 있다. 그럼에도 ‘다문화 수용성 지수’를 알아본 결과 전체 국민의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매우 낮은 51점이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6%만이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유럽 18개국에서는 찬성의 비율이 74%였던 것과 비교된다. 이미 다문화 국가가 된 현재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에 비해 여러 인종을 인정하는 의식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다문화 국가인 미국도 이런 인종차별 이슈가 여전히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는 맥도널드 매장에서 한인 노인 3명이 흑인 청년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흑인 직원은 커피를 주문하던 한국인에게 시비를 걸면서 주먹을 휘둘렀고 옆에서 말리며 폭행 장면을 촬영한 한인 일행도 심하게 맞아 부상을 당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이 사건은 뉴욕타임스에 보도됐고 이후 인종 차별 논란이 불거지며 맥도널드에서 공식 사과 메시지를 내보냈을 만큼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인종차별은 한국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소수 민족을 겨냥한 인종차별 관련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 올 4월에도 죄 없는 흑인을 사살한 백인 경찰관 사건뿐 아니라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던 18세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에 의해 총을 맞아 살해됐다. 하지만 그 백인 경찰이 불기소되자 미국 전역으로 인종차별 항의 시위 및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워싱턴대학교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의하면 흑인이나 아시아인 같은 소수 집단이 더 위험하다는 경찰관의 편견은 이러한 총기 사고의 한 원인이다. 실험 참여자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간단한 비디오 게임을 하게 한다. 사진 속 남자가 들고 있는 물건이 총인지 아닌지를 가능한 한 빨리 결정해야 했는데 권총, 알루미늄 캔, 카메라, 휴대전화, 지갑 중의 하나이다. 이때 사진 속 남자가 들고 있는 물건이 총이면 그 남자는 위험하기 때문에, 참여자는 ‘쏴라’라고 쓰인 버튼을 빨리 눌러야 한다. 총이 아니라면 그 남자는 위험하지 않으므로, 참여자는 ‘쏘지 마라’라는 버튼을 가능한 한 빨리 눌러서 그 남자를 구해야 한다.

어떤 결정을 하는지와 얼마나 빨리 버튼을 누르는지 반응 시간이 모두 기록됐다. 실험 결과, 사람들이 총과 총이 아닌 물체에 반응하는 속도는 사진 속 남자의 인종에 따라 달랐다. 참여자들은 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백인일 때보다 그 사람이 흑인일 때 더 빨리 총을 쐈다. 이는 백인일 때보다 흑인일 때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타깃을 더 빨리 구별했다는 의미다. 총을 소지하지 않았을 때는 그 사람이 흑인일 때보다 백인일 때 총을 쏘지 말아야겠다는 결정을 더 빨리 했다. 즉 참여자들은 타깃이 흑인일 때보다 백인일 때, 참여자 자신을 해치지 않을 유순한 타깃을 더 빨리 구별한 것이다. 또한, 백인일 때보다 흑인일 때 그 사람이 총을 지니지 않았음에도 더 총을 쏘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게 소수 집단에 대한 편견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한정된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과 경쟁하고 또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같은 집단 안에서도 위계질서를 만들려고 하는 동물적 본능도 작동한다. 그 집단 안에서 약한 자들인 소수집단을 억압하고 차별화함으로써 권한과 계급을 추구하려는 본성이다.

한 조직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 적절한 동조와 복종은 물론 필요하다. 이로 인해 그 집단의 응집력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집단 응집력을 위해 약자를 무시하게 된다면 사회의 위험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소수집단이 느끼는 단순한 소외감이 누적된다면 언젠가는 사회 전반에 대한 분노로 바뀔 수도 있다. ‘차이’에 대한 성숙한 수용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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