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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억 기부하고도 남은 짜장면까지 싸가셨던 분"

입력 : 2015-05-25 11:38:30 수정 : 2015-05-25 14: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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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정석규 신양문화재단 명예이사장 추모 열기
"주인 양반, 짜장면 남은 거 좀 싸가겠소."

식사를 마친 노인은 들고온 플라스틱 통을 꺼내 음식을 담아 가곤 했다. 남은 음식을 싹싹 긁어 챙기는 모습이 영락없는 평범한 시골 노인이었다.

생전 모교 서울대에 450억원을 기부한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명예이사장 얘기다.

"감사의 뜻을 전하러 사무실에 찾아갔는데 그런 회장 사무실은 처음 봤어요. 책과 다 뜯어져 20년은 넘은 듯한 소파밖에 없었죠."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향년 86세의 나이로 21일 별세한 정 명예이사장을 이렇게 떠올렸다.

김 전 장관은 2002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재직 시절 정 명예이사장이 어려운 형편의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알게 됐다.

그는 25일 "처음 같이 밥을 먹은 곳이 이사장이 자주 가시던 4천원짜리 칼국숫집이었다"며 "이사장은 중국집을 가더라도 짜장면, 우동만 먹으며 남는 걸 싸가면서도 그렇게 모은 돈을 아낌없이 기부하셨다"고 회고했다.



5년 전 감사의 표시로 '신양 할아버지 감사 이벤트'를 기획했던 화학생물공학부 졸업생 문주용(30)씨도 정 명예이사장의 학생 사랑을 추억했다.

문씨는 "거부가 신은 낡아 떨어진 구두를 보며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몇 년 전부터 후두암으로 힘들어하셨는데,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의 근황을 알아봐 드리면 눈물을 글썽이시며 감동하실 정도로 학생들을 끔찍이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도 추모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별세 소식을 제일 처음 알린 '신양 할아버지께서…'라는 글에는 200여명의 학생들이 댓글을 달았다.

'당신께서 만들어주신 계단 덕분에 현재 저의 꿈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사장님이 살아오신 삶이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됐음을 새삼 느낍니다.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등 졸업생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우일 서울대 연구부총장은 "돈은 분뇨 같아서 한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밭에 풍성하게 뿌리면 고루 수확한다는 것을 평생 신조로 사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김도연 전 장관은 "정 이사장의 아호 '신양'은 태양을 믿는다는 의미"라며 "힘들어도 내일 태양이 뜨니 이를 믿고 힘내자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던 그분의 정신이 후배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19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정 이사장은 무역상 선원으로 일하면서 일본을 오가며 터득한 기술로 1967년 태성고무화학을 설립해 우리나라 고무산업 일인자가 됐다.

1987년부터 모교에 총 450억여원을 기부해 인문대·사회대·공대 등 3곳에 신양학술정보관을 지었다. 서울대 학생 820명이 25억6천2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서울대는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22∼23일 학내 세 곳의 신양관에 분향소를 차렸다. 많은 서울대 교수와 재학생, 졸업생들이 분향소를 찾아와 추모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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