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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광 스님이 국역현토한 ‘장자감산주’ 국내 첫 출간

입력 : 2015-05-26 13:08:41 수정 : 2015-05-26 13: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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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광 스님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모든 종교와 사상이 화합하기를 염원했으며, 병석에서 열반 직전까지 ‘장자감산주’를 번역하는 열정을 보였다. 칠불사 제공
조계종 대강백이었던 전 지리산 칠불사 회주 통광(1940~2013) 스님이 국역현토(國譯懸吐)한 ‘장자(莊子)’ 주해서 ‘장자감산주’(460쪽, 도서출판 나라연)가 국내 첫 출간됐다. 전문(全文)의 현토(한문 구절 끝에 토를 담)와 직역(直譯) 체제를 유지한 것은 학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도가(道家)의 대철인 장자(BC 370~280) 연구에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장자의 저서 ‘장자’는 도가사상의 절대 경전이자 자유와 해방의 철학으로 불리며 많은 주해서가 간행됐다. ‘장자감산주’는 지은이 감산(1546~1623) 스님이 중국 고승이면서 유불도(儒佛道) 3교를 회통할 정도로 대자유인이었다는 점에서 가장 장자의 뜻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통광 스님의 스승인 탄허(1913~1983) 스님도 감산 스님의 장자주석본을 구해보지 못한 것을 늘 안타깝게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번역불사는 스승의 한(恨)을 풀어준 역작이라 할 만하다.

통광 스님은 6세 무렵 한의사였던 부친에게서 천자문과 한시, 고문진보(古文眞寶) 등을 배우며 한문학의 기초를 익혔다. 1958년 18세 때 지리산 연곡사 서굴암에서 한의학을 공부하던 중 고 이종익 박사가 쓴 소설 ‘사명대사’를 읽고 출가를 결심했다. 범어사 시절 엄성호 스님으로부터 선지를 이해하는 안목을 길러 조사어록 해석에서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문 경전 해독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한국 불교를 대표한 대강백 탄허 스님으로부터 전강(傳講) 받아 한암과 탄허 대종사의 강맥을 이었다. 역서 ‘고봉화상 선요 어록’과 ‘동다송’은 후학들과 다도인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장자’에는 다양한 예화를 통해 삶을 통찰하게 하고, 욕심 없이 자연에 순응해 살게 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 담겨 있다. ‘장자감산주’는 감산 스님이 노장(老莊)을 초극한 선종(禪宗)의 입장에서 ‘장자’ 사상을 승화시켜 그 종지를 밝혀놓았다. 통광 스님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 국역에 착수했다. 그 결과 도가(道家)와 선가(禪家) 사상이 어떻게 회통하는지 보여주었고, 바람과 그림자를 움켜잡듯이 ‘장자’의 종지를 꿰뚫어 보게 함으로써 오랜 세월 우언(寓言)으로 풀이된 ‘장자’ 문장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했다. 나아가 물질만능의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광대무변의 자유스러움과 시비를 넘어선 물아(物我)의 경지를 제공하고 있다.

‘장자’는 내, 외, 잡편 등 모두 33편(6만4606자)으로 이뤄졌는데, 내편 7편에 핵심 내용이 온축돼 있다. 통광 스님은 이 책에서 ‘장자’의 내편 7편에 대해 각 편의 종지를 설명한 편해(篇解)와 각 절의 요지를 설명한 절해(節解)를 붙여 전체의 내용을 알기 쉽게 요약했다. 또한 원문을 현토한 뒤 직역과 의역으로 나누어 번역함으로써 장자를 한학과 사상 두 가지 측면에서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감산 스님의 주석까지 원문과 현토완역을 붙임으로써 일관된 학문적 엄밀성을 보여줬다.

“물길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있는 역량이 되지 못한다. 한 점 장애가 없어야만 비로소 자유자재로 쾌활하게 남쪽 바다로 날아갈 수 있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비방은 한 가지이지만, 한 사람은 그 비방으로써 봉읍(封邑)을 얻고, 한 사람은 줄곧 솜 빨래를 면하지 못한 것은 그 비방을 사용하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소요유’ 편에서)

“편견(偏見)을 지닌 사람에 의해 도(道)는 가려지고, 과장된 말에 의해 바른 말은 가려지게 된다. 성인은 시비의 길을 따르지 않고 자연의 밝음인 천(天)으로써 비춰 본다. 진실을 따르면 시비가 모두 사라지게 된다.”(‘제물론’ 편에서)

모든 인위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무위(無爲)로써 살아야 한다고 일깨웠던 장자. 마음은 천하에 있으되 몸은 강호에 머물렀던 그는 일상의 틀을 깨는 유연한 사고로 일생을 살았으며, 인간을 옭아매는 모든 욕망들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꿈꾸게 해주었던 도가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통광 스님은 이 책에서 노장 사상을 폭넓게 수용해 진리가 결코 둘이 아님을 드러내 보이고, 어디에도 흔들림 없이 안심입명(安心立命)에 집중했던 장자의 초탈적 세계를 웅숭깊게 펼쳐 보인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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