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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칼럼] 창의성과 사회적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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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08 06:11:49 수정 : 2015-06-08 06: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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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창조경제’를 화두로 내세우며 각종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다. 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찾기 위해 채용 방식을 바꾸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렇게 온 사회가 이전과 달리 창조와 창의성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은 적절한 방향 설정이다. 특히 산업의 경우 지난 반세기 동안 선진국을 모방하며 압축 성장을 해왔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제일 선두에 서서 많은 분야의 문법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미 있던 것을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기존의 판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소리 높여서 외치는 창조와 창의성을 배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교육분야의 혁신이 필요하다. 대형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잊지 않고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교육 현장은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과정이 대입을 향해 직렬로 연결돼 있다. 대입에 조금이라고 유리한 점수를 따기 위해 학생은 비슷한 문제를 수없이 푸는 문제풀이의 기계가 돼가고 있다. 훌륭한 학생은 정답을 가장 빨리 찾는 좋은 기계와 다를 바가 없다. 교육과정도 문제 해결을 위해 자유롭고 여유 있는 대화가 아니라 정답을 최단시간에 찾는 놀이로 대체되고 있다. 이러한 주입식 교육이 버젓이 실행되고 있는데도 창조와 창의성의 가치를 외친다면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형국이다.

아울러 창의성을 살려서 그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생산해냈을 경우 지식재산권이 철저하게 보장돼야 한다. 하나의 제품을 탄생시키려고 하면 그 앞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랜 실패 끝에 히트를 친 상품을 개발해 지나간 시간에 걸쳐서 투자했던 시간과 비용을 보상받지 못하면, 창의적인 제품에 미쳐서 밤잠을 잊은 영혼이 나올 리가 없다. 이렇게 보면, 창조와 창의성을 살리려면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최단시간 안에 정답을 찾는 순발력의 놀이로부터 자유로운 교육이 가능해야 하고, 창의를 발휘한 제품을 생산해냈을 때 지식재산권을 철저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안정적인 직장을 뛰쳐나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자유로운 영혼이 넘쳐날 수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그런데 최근 일어난 두 사건을 보면 우리 사회에 창조와 창의성이 발붙이기가 쉽지 않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성진 디자이너는 7년의 개발 기간을 들여 인기 있는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처음 매출액이 껑충 뛰어 지난날의 고생을 보상받는 듯했지만 얼마 있지 않아 대기업의 디자인 도용 또는 약탈이라고 볼 수 있는 제품이 출시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제품은 판매되지 않고 재고로 쌓이게 됐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돈도 돈이지만 개발을 향한 의욕을 완전히 꺾어놓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학원 가기 싫은 날’의 시가 들어간 동시집을 냈는데 ‘엄마를 씹어먹는다’는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언론에 보도가 된 뒤에 출판사는 결국 책을 전량 수거해 폐기 처분을 했다. 어린이는 환상과 현실을 완전히 구분하지 못한다. 아울러 오늘날 학원은 단순히 모자라는 학과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다니는 곳이 아니라 싫건 좋건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끌려다니는 감옥과 같은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잔혹한 환상을 담았다고 해서 그 상상력의 발휘를 금지시킨다면 결국 판에 박힌 생각 이외 다른 것을 하지 말라는 소리이다.

우리는 창조와 창의성을 외치면서 그것과 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 가자고 하면서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공자는 일찍이 “평화와 관련된다면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라(當仁, 不讓於師)”며 생각의 자유를 설파한 적이 있다. 공자와 달리 너무 많이 양보하면서 창의성을 바란다면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들을 수 없는 메아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리라. 창의성의 메아리를 들으려면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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