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차 마을이 그림 같은 녹음과 어우러져 더욱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
오르차는 오래된 성과 자연이 좋은 작은 마을이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채식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걀조차 없고, 술을 먹는 건 당연히 금지다. 그렇다고 여행객이 맥주 한 병도 못 마시는 건 아니다. 단골이 된 식당에 얘기했더니, 자전거를 타고 다른 마을에 가서 사다 줬다. 이 술을 신문지로 싸놓고 마시기만 하면 별 문제 없었다. 먹는 것만 빼면 장기체류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 작은 마을에 며칠만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랑 친하게 된다.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던 인도 결혼식에도 초대받게 됐다. 이후 인도를 계속 여행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결혼식을 갈 수 있게 됐지만, 그때는 처음이라서 무척 기대됐다. 낮에는 동네 전체를 돌면서 축제를 즐겼다. 결혼식이 있는 집에는 음식이 가득 차려졌고, 음악에 맞춰서 사람들은 춤을 췄다. 잔치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을 일단 먹고 사람들과 같이 춤을 추면서 놀았다. 결혼 당사자인 신부는 예쁘게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의자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다들 신나게 노는 가운데 그 신부가 신경이 쓰였다. 신랑과 나이 차가 있어 보여서 짐작은 했다. 아직도 이런 관습이 남아 있어 씁쓸하게 만들었다.
흙길을 따라가다 보면 뜬금없이 나타나는 고성. |
오르차는 사람과 자연이 순수하다.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과일주스를 마시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다니면, 어디선가는 짜이 한 잔을 권한다. 더워도 짜이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더위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주는 ‘정’에서 오는 따뜻함이라 생각한다.
짜이 한 잔을 마시러 들어간 집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가족과 인사를 나눈다. |
어느 한 부분만 남았다 하더라도 아름답다. |
유명한 고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버려진 성들이 더 아름답다.
그곳은 마치 어렸을 때 읽으면서 상상했던 동화 속에 들어간 환상을 심어준다.
오래된 성에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
오래된 성에 올라 바라본다. |
그 나무들 사이로는 강이 흐르면서 완벽한 풍경을 만들어준다. 오르차에 오래 있다 보면 좋아하는 고성 하나쯤은 생긴다. 그 성이 내 것인 것처럼 매일 갔다.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고, 파랑새가 불러주는 노랫소리도 좋다.
친해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때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
또 다른 이색적인 곳이 있어서 찾아갔다. 그곳에 오르면 세상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360도를 돌면 세상이 둥글게 보인다. 가는 데만 걸어서 한 시간이 걸렸고, 돌아오는 길에도 지쳐서 한 시간 넘게 걸어왔다. 그러는 동안 물 한 모금 마시기가 힘들었다. 마을에서 떨어진 곳이라서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탈수증세를 보이며 숙소에서 쓰러졌다.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 나에게 친해진 마을 아주머니가 물 한 컵을 가져다주셨다. 소금과 라임을 넣은 물이었다. 마시기 힘들어도 다 마시라고 했다. 목으로 넘기기 힘들었지만 다 마셨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일어날 힘이 생겼고 금세 좋아졌다. 어디를 가든 물 정도는 챙겨 다녀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일어섰다. 그래도 둥근 하늘을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됐다. 나만의 숨은 장소로 꼽고 싶다.
친해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때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
1531년 라지푸트왕조 당시 수도였던 오르차에는 라지마할 유적지와 힌두교 사원인 람라자사원 등 볼거리가 많다. 하지만, 오르차는 대형 버스가 올 정도로 유명하거나 여행자가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더 조용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배낭여행자가 천천히 인도 여행을 할 때 찾는 곳이다. 조용히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고성이 뜬금없이 나타나고, 색바랜 사원이 나온다.
붉은 흙길을 걷고 파란 하늘에 작은 파랑새를 보며, 흐르는 강물을 건널 수 있다면, 그곳이 동화 속일 것이고, 그곳이 바로 오르차일 것이다. 오래 머물러서 그런지 친해진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데 아쉬움이 가득했다. 가끔 맥주를 사다 주던 친구는 눈물을 보이려 해서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언제나 떠나는 사람보다는 남는 사람이 슬프게 마련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차에 올랐다.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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