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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짜이 한 잔] 동화 속 마을 오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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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18 18:17:36 수정 : 2015-06-19 00: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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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성·노래하는 파랑새… 상상 속 마을이 눈앞에
오르차 마을이 그림 같은 녹음과 어우러져 더욱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인도 카주라호에서 ‘오르차(Orchha)’로 가기 위해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지붕까지 짐을 가득 싣고, 사람도 가득 채운 후 출발했다. 가격이 더 비싼 좌석표를 사고 버스를 탔지만 의자에 앉아서 가기 힘들었다. 아기를 안고 탄 여자가 한 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위태롭게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앉으라고 했지만 아기만 안겨줬다. 갓난아기는 낯선 사람에게 안겨서도 울지 않고 큰 눈으로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인도에서 버스를 타고 달리는 길은 힘들지만 그래도 좋다. 

 
먼지 날리는 길이 울퉁불퉁해서 엉덩이가 들썩거리지만, 나무가 줄지어 길을 안내해준다. 가끔은 소나 말도 사람과 함께 지나간다. 창밖을 바라보고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다 보니 어느새 오르차에 도착했다. 

오르차는 오래된 성과 자연이 좋은 작은 마을이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채식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걀조차 없고, 술을 먹는 건 당연히 금지다. 그렇다고 여행객이 맥주 한 병도 못 마시는 건 아니다. 단골이 된 식당에 얘기했더니, 자전거를 타고 다른 마을에 가서 사다 줬다. 이 술을 신문지로 싸놓고 마시기만 하면 별 문제 없었다. 먹는 것만 빼면 장기체류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 작은 마을에 며칠만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랑 친하게 된다.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던 인도 결혼식에도 초대받게 됐다. 이후 인도를 계속 여행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결혼식을 갈 수 있게 됐지만, 그때는 처음이라서 무척 기대됐다. 낮에는 동네 전체를 돌면서 축제를 즐겼다. 결혼식이 있는 집에는 음식이 가득 차려졌고, 음악에 맞춰서 사람들은 춤을 췄다. 잔치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을 일단 먹고 사람들과 같이 춤을 추면서 놀았다. 결혼 당사자인 신부는 예쁘게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의자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다들 신나게 노는 가운데 그 신부가 신경이 쓰였다. 신랑과 나이 차가 있어 보여서 짐작은 했다. 아직도 이런 관습이 남아 있어 씁쓸하게 만들었다.
흙길을 따라가다 보면 뜬금없이 나타나는 고성.

오르차는 사람과 자연이 순수하다.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과일주스를 마시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다니면, 어디선가는 짜이 한 잔을 권한다. 더워도 짜이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더위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주는 ‘정’에서 오는 따뜻함이라 생각한다. 

짜이 한 잔을 마시러 들어간 집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가족과 인사를 나눈다.
예쁜 샤리를 휘날리면서 집에 들어오라는 여인을 따라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짜이 한 잔을 가져오면서 온 가족이 다 와서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수줍어서 엄마의 샤리로 얼굴을 감추면서도 힐끔 쳐다본다.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해하기보다는 내 이름과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다. 서로 이름을 알아가고, 서로 삶을 이야기하는 순간에는 각자의 나라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점심 때가 지나서 꼭 찾아가는 곳은 고성이다. 
어느 한 부분만 남았다 하더라도 아름답다.

유명한 고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버려진 성들이 더 아름답다. 

그곳은 마치 어렸을 때 읽으면서 상상했던 동화 속에 들어간 환상을 심어준다. 

오래된 성에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상상을 더해주는 건 파랑새다. 오르차는 유난히 파랑새가 많다. 이곳에서는 흔한 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눈을 의심하곤 한다. 파란색, 초록색을 지닌 새가 지저귀며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오래된 성에 올라 바라본다.

그 나무들 사이로는 강이 흐르면서 완벽한 풍경을 만들어준다. 오르차에 오래 있다 보면 좋아하는 고성 하나쯤은 생긴다. 그 성이 내 것인 것처럼 매일 갔다.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고, 파랑새가 불러주는 노랫소리도 좋다. 
친해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때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또 다른 이색적인 곳이 있어서 찾아갔다. 그곳에 오르면 세상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360도를 돌면 세상이 둥글게 보인다. 가는 데만 걸어서 한 시간이 걸렸고, 돌아오는 길에도 지쳐서 한 시간 넘게 걸어왔다. 그러는 동안 물 한 모금 마시기가 힘들었다. 마을에서 떨어진 곳이라서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탈수증세를 보이며 숙소에서 쓰러졌다.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 나에게 친해진 마을 아주머니가 물 한 컵을 가져다주셨다. 소금과 라임을 넣은 물이었다. 마시기 힘들어도 다 마시라고 했다. 목으로 넘기기 힘들었지만 다 마셨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일어날 힘이 생겼고 금세 좋아졌다. 어디를 가든 물 정도는 챙겨 다녀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일어섰다. 그래도 둥근 하늘을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됐다. 나만의 숨은 장소로 꼽고 싶다. 
친해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때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1531년 라지푸트왕조 당시 수도였던 오르차에는 라지마할 유적지와 힌두교 사원인 람라자사원 등 볼거리가 많다. 하지만, 오르차는 대형 버스가 올 정도로 유명하거나 여행자가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더 조용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배낭여행자가 천천히 인도 여행을 할 때 찾는 곳이다. 조용히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고성이 뜬금없이 나타나고, 색바랜 사원이 나온다. 

붉은 흙길을 걷고 파란 하늘에 작은 파랑새를 보며, 흐르는 강물을 건널 수 있다면, 그곳이 동화 속일 것이고, 그곳이 바로 오르차일 것이다. 오래 머물러서 그런지 친해진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데 아쉬움이 가득했다. 가끔 맥주를 사다 주던 친구는 눈물을 보이려 해서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언제나 떠나는 사람보다는 남는 사람이 슬프게 마련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차에 올랐다.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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