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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파문과 문학의 갈 길

입력 : 2015-06-25 20:22:10 수정 : 2015-06-26 00: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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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출판사 ‘스타 만들기’ 개혁없인 한국문학 정상화 어렵다”

“여기 모이신 분들이 작가, 시인이라면 더군다나 한국작가회의 회원분이시라면 지금 신경숙 표절 논란이 어떻게 각종 매스컴에서 선정적으로 소비되고 있는지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검찰에 고발한 일은, 경악을 넘어 절망스럽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저처럼 곤혹과 환멸, 분노를 느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먼저 신경숙 작가에게 문학에 관심도 없던 뭇대중처럼 돌을 던질 게 아니라, 마녀사냥처럼 번져가는 이 기이한 집단 광기의 횃불이 될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비평가로서 냉정과 이성을 우선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 신경숙 작가에 대한 재판을 위해 모인 것은 아닙니다.”
신경숙 표절 파문으로 인해 지난 23일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이날 토론회에 운집한 취재 인파는 ‘한국문학 스캔들’의 위세를 실감케 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신경숙 표절 파문을 계기로 열린 토론회에 문학평론가 정은경(원광대 문예창작과 교수)씨가 제출한 토론문이다. 신경숙 표절을 비판하는 광풍이 휘몰아치는 한가운데에서 이런 발언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송사와 신문사는 물론 각종 인터넷매체 기자들로 발디딜 틈 없이 꽉 찬 자리였다. 한국문학이 이처럼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모를까, 재연될 것 같지는 않다. 이 자리에서 정 교수가 신경숙을 옹호하기 위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아니다. 그이야말로 과거 아무도 쉬 신경숙의 아성을 건드리지 않을 때 냉정한 비판을 가해 소수자의 설움을 맛보았던 장본인이다. 그가 하려는 ‘냉정과 이성을 갖춘’ 이 시점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를 계기로 한국문학의 현재에 대해 더 치열하게 성찰했으면 하는 바람”이 이루어지려면 “지금의 마녀사냥식의 선정적인 타매(唾罵)와 광풍에서 조롱거리가 되어 버린 ‘한국문학 스캔들’에서 먼저 빠져나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날 그가 말하고자 한 고갱이였다.

신경숙이 치명적인 실수를 했고, 나아가 출판사와 본인이 해명을 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분노를 자극해 사태를 이 지경까지 키운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학평론가 박철화는 “신경숙의 표절을 가장 먼저 문제 제기한 한 사람으로 나는 작가 혼자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신경숙 자신의 오만한 처신이 사태를 키운 셈이지만 그래도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으로 그친다면 제2, 제3의 신경숙은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밝혔다. 그가 “메이저 출판사들이 자신들의 스타 제조 시스템을 반성하고 바꾸려는 노력 없이 한국문학은 정상화되기 어렵다”고 결론적으로 제시한 해법은 새겨들을 만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날 토론회의 심보선 시인 발언은 신선했다. 그는 “이 썩은 시스템에서 작가들은 이미 저항을 하면서 나름대로 해법을 찾아왔다”면서 “수호해야 할 공동의 신성한 대상처럼 언급하는 한국문학에 대한 생각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문학이란 “외부의 비평적 개입에 의해 관리, 정화, 개선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 한국어로 쓰여졌고 쓰여질 온갖 종류의 글들, 그 글들을 읽는 독서행위, 그 독서와 쓰기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유기적 생태계”라는 것이다. 그는 “이 자리는 이미 작동해온 한국문학의 크고 작은 자정작용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법석을 떠는 언론이나 호사가들에 강조하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는 토론회 개최에 이어 구체적인 표절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공론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국문인협회(이사장 문효치)는 표절 문제를 다룰 상설기구로 ‘문학표절문제연구소’ 설치 추진의사를 밝혔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을 통해 ‘문학권력’에 대해 언급한 권성우, 김명인, 오길영, 이명원, 조영일 등 문학평론가 5명을 조만간 마련할 좌담에 초청하겠다고 25일 밝혔다. 이 자리를 통해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고칠 것은 고치겠다”며 “한국문학이 신뢰를 회복하고 동료 문인들이 자존감을 되찾고 독자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출판사의 상업주의를 개선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득을 좇아 움직이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상업주의의 바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를 ‘한국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비평가를 내세워 호도하는 문제일 것이다. 심 시인의 지적처럼 한국문학은 어떤 특정집단이 좌지우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독자들 또한 베스트셀러만 맹신하면서 따라 읽는 풍토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신경숙 사태는 한국문학의 자정작용을 가속화하고 알찬 독서 풍토를 일구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득이 되는 독일 것이다. 신경숙 본인의 향후 글쓰기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절필을 선언하지 않았으니 언젠가는 다시 접하게 될 신경숙의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그의 소설 제목처럼 ‘깊은 슬픔’이야말로 고래로 명작들의 훌륭한 거름 아니던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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