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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품격·당대성 지닌 배우"… 白 "累가 되지않을까 걱정"

입력 : 2015-06-28 22:14:46 수정 : 2015-06-29 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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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연출 이윤택·주연 백석광 지난해 이맘때 백석광은 5년차 무명배우였다. 1년이 지난 현재 그는 국립극단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주연인 연산군을 맡았다. 20년 전 유인촌, 12년 전 이상직이 연기한 묵직한 역할이다. 그를 발탁한 이는 연극계 거장 이윤택 연출. 계기는 지난해 8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였다. 이윤택은 축제에서 연기하는 그를 보자 직감적으로 ‘이 친구가 당대성을 지녔구나’하고 느꼈다. 바로 “내하고 연극해보지 않겠나” 제안했다. 최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이 연출가는 “그때 마침 ‘혜경궁 홍씨’에서 사도세자를 할 배우를 찾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사도세자는 아주 까다로운 인물이에요. 햄릿형이죠.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고 이성과 감성을 넘나들어요. 백석광은 당대의 전형성을 띨 수 있는 배우였어요. 당대성이란 배역과 배우가 서로 연상 작용을 일으켜 플러스 알파를 창출하는 걸 말해요. 배우가 역할에 적절한 이미지와 품격, 지성, 의식, 분위기를 다 갖추고 있어야 해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발견되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백석광은 연산, 사도세자, 햄릿 같은 역할에 적절한 배우에요.”(이윤택)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의 연출가 이윤택(오른쪽)이 주연 배우 백석광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제안을 덥석 물었다가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혜경궁 홍씨’ 대본을 읽어보고는 선생님의 역사성·연극성에 큰 감흥을 받았어요. 꼭 해야겠다 마음먹었죠.”(백석광)

사도세자 역은 이윤택이 마련한 시험대였다. 백석광은 이 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이윤택은 그에게 다시 연산 역을 맡겼다. ‘문제적 인간 연산’은 보통 폭군으로 그려지는 연산군을 새롭게 해석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윤택은 연산에 대해 “자기 주장을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은 이상주의자이자 자기 모순에 의해 사라져간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연산은 여성주의적이고 여성성이 강해요. (장)녹수 같은 경우도 연상이고 그렇게 예쁜 여자가 아니죠. 군주로서 연산은 학풍, 가문, 충, 효 같은 제도권적 지식과 구조에 굉장한 반발을 가졌어요. 이상주의적이고 대단히 시적인 인물이에요. 현실을 뛰어넘어 대신들과 다른 세상을 꿈꿨어요. 마지막에 연산이 대신들에게 ‘너네들 붓끝에 놀아나는 나는 미친 광대였구나’라고 얘기해요. 연산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성주의, 합리주의, 현실주의라는 붓끝에 놀아난 미친 광대인 거죠.”

이번 공연은 대본을 제외하면 초연과 크게 달라진다. 과거에는 이 연출가가 음악, 의상, 연기까지 주도했다. 이번에는 전문가들이 각 분야를 이끌고 연출가는 최종 선택만 한다. 이윤택은 “초연 때는 과잉된 에너지가 밀어붙이는 힘이 있었다”며 “지금은 공연미학적으로 훨씬 풍성해지고 차분하게 정리됐다”고 전했다.

“변화가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이 단계를 거치는 이유는 제가 죽어도 누군가 ‘연산’을 계속 공연하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그러려면 작품이 연출가로부터 독립해야 해요. 우리 희곡의 가장 큰 문제는 작가가 죽으면 공연이 잘 안 된다는 거예요. 이번 작업이 초연보다 재미없다면 이 작품은 이윤택의 불 같은 에너지가 밀어붙인 아방가르드한 연극으로 끝나는 거죠.”

백석광은 이런 연산을 표현하는 데 대해 “관객은 ‘연산’하면 파멸하는 군주의 모습을 기대한다”며 “배우는 관객이 원하는 인물을 구축해서는 안 되고 그 인물을 들여다보고 자신과 심리적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중퇴하고 같은 학교 연극원 연출과로 방향을 튼 이색 이력을 가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한국 무용을 해 몸 움직임이 좋다. 이윤택은 배우로서 그에 대해 “몸에 대한 감각은 물론 말에 품위가 있다”고 평했다. 앞으로에 대해서는 “배우로서 대성할지 우려스럽다”고 답했다.

“우리 연극계는 좋은 배우에 대한 기준이 없어요. 몇몇 배우에게 쏠림 현상이 심해요. 내성이 강하고, 강한 의지력과 개성을 지닌 배우들이 살아남아요. 부드러운 배우들은 소외되기 쉽죠. 내가 보는 백석광은 굉장히 부드러운 배우에요. 독종이 아니죠. 배우로서 존재감을 개성적으로 드러내는 편이 아니에요. 좋게 말하면 똑똑하고 마음이 좋고, 상당히 지혜롭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죠.”

이윤택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배우로서 품격이 있는 이’다. 모국어에 대한 인식, 몸 움직임에 대한 기본기, 소리에 대한 감각도 갖춰야 한다. 그는 백석광에게 “배우로서 품격을 지키고 기본기를 쌓았으면 한다”며 “너무 빨리 두각을 나타내지 말고 계속 이대로 천천히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의 바람에 화답하듯 백석광은 “빨리 뜨려고 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사실 저는 지금 공해가 덜한 작업 환경을 추구하며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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