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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현실과 가상 사이…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판타지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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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29 20:25:29 수정 : 2015-06-29 21: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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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무기 오브제 삼은 사진작가 임안나
탱크와 전투기가 화려한 조명 속에 무대의 주인공처럼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군부대에 직접 들어가서 조명을 설치하고 촬영한 사진들이다. 일반적으론 잘라내야 할 부분이지만 조명 장치도 사진 프레임 안에 들어와 있다. 사진작가 임안나(45)의 작업 방식이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폐무기 전시풍경도 사진 속에 담았다. 요즘엔 무기 프라모델에 흰 색칠을 하거나 흰 천을 덮어 백색공간에 위치시켜 사진을 찍는다.

하얀 공간과 무기 오브제가 어우러져 판타지한 공간을 연출하고 있는 임안나의 ‘Frozen Objects’.

“어느날 생활공간이자 편의시설이라 할 수 있는 공원, 휴게소, 놀이시설에 무기가 놓여 있음이 생경해 보였다. 그 생뚱맞음을 환기시켜 보고 싶었다.”

중견 여성사진작가 리더로 촉망받고 있는 그는 실재와 장난감, 사실과 가상, 심각함과 가벼움으로 표현한 두 갈래의 작업방식을 통해 전쟁을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행동양식에 관한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한다. 폐무기들은 원래의 기능과 상관없이 현실 풍경 속의 초현실적 조형물로 다가온다. 흑백의 평범한 듯한 풍경사진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상황을 일깨우기 위한 의도적인 역설법이다. 끔찍한 살생무기 앞에 포토존 명판이 부착되어 있거나 공룡조각, 벤치, 벚꽃과 공존하고 있다. 시골 벌판에 탱크가 경운기마냥 덩그러니 놓여 있거나 무기 사이로 아이가 뛰어가는 장면도 작가가 의문시하는 화제의 포착이다. 역할을 잃은 차가운 오브제들이 주변 환경과 병치되고 중첩되어 이루는 낯선 장면은 분명 이 시대의 진귀한(?) 풍경이다.

“전쟁기념관 속 무기들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전투 로봇을 신나게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내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그 어색한 느낌이 바로 나의 작품 모티브다.” 
무모함에 대해 늘 로망을 가지고 있다는 임안나 작가.

그는 현실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이상한 요소들을 토대로 가상의 전쟁기념관을 짓고 사진을 찍었다. 실재를 흉내낸 장난감 무기들과 얼굴이 없는 전쟁영웅들의 흉상이 함께 자리를 했다. 판타지 같은 풍경이다.

“전쟁(무기)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이 판타지가 된다. 판타지는 두려움의 출구가 되기 때문이다. 힌 배경의 백색 오브제는 여백처럼 판타지가 피어나게 해준다.”

그는 순백의 공간과 오브제들 속으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쥐고 있을 법한 빨간 풍선을 두둥실 띄운다. 전쟁의 처참한 순간은 하얗게 망각되고 흥미로운 놀이로 다가온다. 전쟁놀이다.

그는 왜 전쟁영웅의 흉상에 얼굴은 사라지게 했을까.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무기를 전시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어느 시점부터 전쟁영웅은 사람이 아니라 첨단 무기가 됐다. 스텔스기 하나에 평화를 의존하는 형국이다. 우리가 인간보다 ‘무기 기계’에 평화를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옛 전쟁영웅들에겐 권선징악과 대의라는 명분이 있었음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첨단 무기가 영웅을 대체하는 이 시대엔 개인이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은 사라지고, 두려움만 계속 증폭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경험하는 전쟁은 영화와 게임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장면들이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과 가상의 사이에서 전쟁에 관한 판타지와 두려움을 동시에 발견한다. 개인은 전쟁에 대하여 한없이 유아적이고 파편적인 인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타자다.”
임안나 작가의 작업실 전경. 모형탱크를 촬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현실 속 거대한 폐무기들이 놓여 있는 풍경들을 찾아 촬영한다. 전쟁을 상기하는 이 차가운 오브제들은 주변 자연환경과 병치되고 중첩되어 낯선 장면들을 주도한다. 이러한 기억과 기념의 행위방식에서 그는 엉뚱한 토템미즘적인 습성을 발견한다. 언제부턴가 전쟁의 영웅은 사람이 아닌 기계로 대치되고, 신화화되는 숭배의 대상도 저 차가운 금속의 오브제로 전환되었음을 목격한다.

“흰색의 벽으로 재현한 기념관 안에서 백색이나 하얀 천으로 감춰진 전쟁 오브제들은 감정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순수한 형태로만 존재하게 구성했다. 어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저 풍경 속에서 관람객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느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전쟁무기라는 오브제를 통해 반영되는 우리의 인식에 대하여 그 특유의 유아적 표현 기법과 엉뚱한 연출기법으로 지속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쟁이라는 거대 담론 앞에 개인이 다가갈 수 있는 또 다른 통로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예술이 끊임없이 기존의 관념에 질문하게 만드는 시간 동안, 입력되어 있던 사람들의 기억이 재편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내 작업의 존재 이유다.”

그는 “무기를 설명하다 보면 파괴력이나 가격을 말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수치로 이어진다”며 “그렇다면 우리에게 전쟁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 이르면 전쟁과 상반된 곳에 있는 평화란 과연 무엇인지 그 가치도 모호해진다”고 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전쟁을 바라보는 이 시대를 ‘다시보기’해야 한다.”

그는 생과 사가 가로지르는 순간과 대상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무모함의 로망이라 했다. 여성작가로 가장 남성적인 무기에 카메라를 들이댄 이유이기도 하다. “백남준 선생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을 때 나는 전율을 느꼈다. 내면이 얼마나 튼튼했으면 그런 자유로움을 구가할 수 있었을까. 무모함의 로망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해준 선배다.” 7월19일까지 서울 통의동 진화랑 개인전. (02)738-7570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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