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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의건축이야기] 한강 다리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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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30 22:43:27 수정 : 2015-06-30 22: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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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프랑스의 영화감독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는 퐁네프 다리에서 만난 두 불우한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인데, 두 사람이 휘황찬란한 불꽃놀이를 배경 삼아 퐁네프 다리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본 뒤 만약 프랑스에 가면 주인공들의 사랑의 보금자리인 퐁네프 다리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 뒤 파리에 갔을 때 일부러 퐁네프 다리를 찾아갔다. 그곳은 영화 탓인지 연인으로 보이는 여행객이 유독 많이 눈에 띄었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건 자물쇠들이 달려 있었다. 퐁네프 다리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400년 역사를 지닌 다리인데 파리 최초의 석조다리라고 한다. 영화를 보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초라했는데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곳에 한동안 머물며 강을 바라보고 젊은 시절을 회상했다.

김영수 건축사
파리에 가서 일부러 찾았던 다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른다’라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에 등장하는 미라보 다리였다. 시인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소개로 마리 로랑생이라는 화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아폴리네르는 로랑생이 미라보 다리 근처로 이사를 하자 그도 다리 근처로 옮겼다. 둘은 미라보 다리를 오가며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그러다 둘이 헤어진 뒤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라는 시를 썼다. ‘사랑이 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이 떠나가네 / 삶처럼 저리 느리게 / 희망처럼 저리 격렬하게.’ 이렇게 이어지는 시를 읽으며 실연의 상처를 달랬던 젊은 날의 추억이 내게 미라보 다리를 찾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알베르 카뮈, 장 폴 사르트르, 아르튀르 랭보 등이 자주 걸었다는 퐁데자르 다리에는 ‘예술의 다리’라는 별칭답게 거리의 화가와 음악가들이 몰려들었고, 나폴레옹이 180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건설을 명령했다는 이에나 다리는 에펠탑의 거대한 모습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이 걸어서 건너는 다리이다. 파리의 예술·역사와 궤적을 같이한 센 강 위의 30여개 다리는 지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살기 좋고 건강한 도시를 고민하며 건축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참 부러운 일이다. 각기 다른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다리, 그것을 잘 보존해 영화, 시, 그림, 노래 속에 등장시켜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예술가와 시민, 그리고 정부.

우리에게는 센 강보다 훨씬 더 길고 넓고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한강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한강 다리에 얽힌 건설 비화나 가슴을 울리는 낭만과 예술의 다리는 없다.

보도에 따르면 2018년까지 세빛섬, 노들섬, 잠실 수중보 등 한강 곳곳에 경관 조명이 설치된다고 한다. 아름다운 조명과 더불어 다리마다 애칭을 지어 부르면 어떨까. 지금부터라도 다리마다 특별한 이야기와 볼거리가 만들어진다면 우리의 한강과 교각도 외국에서 찾아와 보고 싶은 명소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영수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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