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롭게 오류 수정할 길 열어줘야 나는 오늘도 거짓말로 하루를 시작해서 거짓말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살이 쪘다고 불평하는 아내에게 ‘당신은 아직도 20대 같아’라고 말하고 출근길에 오른다. 아침부터 마감 원고를 독촉하는 언론사엔 거의 다 됐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다. 형편없는 논문 초안을 가지고 찾아온 대학원생에게는 금방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으니 힘내라고 또 거짓말을 한다. 저녁에 한잔하고 싶어서 연락이 온 술꾼 친구에게는 학과 회의가 저녁에 있다고 둘러댄다.
내 삶이 이러면서도 남의 거짓말에는 분통이 터진다. 얼마 전 하버드와 스탠퍼드 대학 모두를 다니게 됐다는 한 아이의 거짓말에도 그랬고,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사실을 숨긴 메르스 1번 환자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거짓말은 인간만의 독특한 특성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단순한 단세포 생물인 세균에게서도 거짓말의 원형은 발견된다. 세균은 몸 밖으로 효소를 분비해 먹이를 분해해서 흡수한다. 가끔 이 효소를 만들지 않는 ‘거짓말쟁이’ 돌연변이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들은 남이 분비한 효소의 산물을 공짜로 먹고 자란다. 물론 인간의 거짓말은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지구상 생물 중 가장 고도로 진화한 뇌에서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것과 동시에 거짓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반응도 우리 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내가 과학자라는 직업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하는 일의 성격상 거짓이 없고 뭔가 순수한 진리만을 추구하는 직업이라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강호정 연세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 |
논문 게재와 관련된 이런 거짓말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소위 말하는 초일류급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려면 논문의 참신성과 논리적 완결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연구와 확연히 다른 결과를 완벽하게 보여줘야만 하고, 이 과정에서 위험한 선을 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국내에서는 몇 가지 요소가 더 작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과학계의 평가에서 논문 숫자를 최우선으로 친다. 그러다 보니 논문의 질 자체보다는 논문 편수와 어느 학술지에 게재했는지에 집착한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발견해도 이를 명예롭게 수정할 방법이 없다. 잘못된 논문은 추후에 철회라는 방법으로 무효화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발적인 것이 아니고 남이 문제를 제기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추후에 잘못을 발견한 경우, 자발적으로 그리고 명예롭게 취소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과학계도 그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반영한다. 거짓말을 실컷 해도, 다음 선거에서 오뚝이처럼 당선되는 정치인들, 대충 규정을 위반해도 결과만 잘 가져오면 우수한 직원으로 인정하는 회사,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 과학계도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아내에게 함께 운동하자고 제안하고, 마감 기일을 더 늦추어 달라 부탁하고, 아직 수정해야 할 것이 많으니 같이 노력하자고, 술 없이 밥만 먹자고 말하는 것이 내 개인적인 거짓말도 줄이고, 내 과학 연구의 진실성을 확보하는 첫걸음이리라.
강호정 연세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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