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놀이터의 공동육아

관련이슈 기자가 만난 세상

입력 : 2015-07-01 22:34:28 수정 : 2015-07-01 22:34:2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니 지난 3월쯤이 아니었나 싶다. 놀이터에서 놀던 딸을 누군가 부르더니, 헝클어진 머리를 야무지게 묶어줬다.

“아는 아줌마야?”

“놀이터에서 가끔 보는 이모야.”

나는 ‘아줌마’냐고 물었고, 딸은 ‘이모’라고 대답했다. 놀이터라는 곳을, 더 정확히는 놀이터에서 맺어지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흥미로워진 건 그때부터였다. 놀이터는 분명 어른과 아이 사이에 오가는 살뜰함, 친밀감의 정도가 특별히 높은 곳이다.

3개월여 관찰에 따르면 놀이터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호감과 관심을 표시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름이 뭔지, 몇 학년인지, 내 아이와는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등을 꼬치꼬치 묻는다. 예쁘다, 씩씩하다, 의젓하다 등 의례적인 수식어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 보호자를 자처하기도 한다. 

강구열 문화부 기자
얼마 전 나는 아이 친구의 할머니로부터 오후 6시 정도까지는 당신이 놀이터에서 데리고 놀 수 있으니, 아이를 데리러 오는 게 늦을 것 같으면 전화만 하라는 말을 들었다. 아내에게 전했더니 이미 그러고 있고, 그게 미안해서 아내도 그 집 아이들을 맡아줄 때가 있다고 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어른들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것은 어른들의 이런 태도 때문이 아닌가 짐작한다. 지난 토요일 저녁 아들과 야구를 하고 있는데, 재밌어 보였는지 처음 보는 아이가 다가와서는 같이 하면 안 되느냐고 해 1시간 넘게 함께 놀았다. 나와 안면을 튼 아이 친구들의 태도가 또 재밌다. 다른 곳에서는 쑥스럽게 인사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놀이터에서 만나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느니, 그네를 밀어달라느니 스스럼이 없다.

왜일까. 놀이터의 아이들은 대개 내 아이와 소속집단이 비슷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는 게 나름의 결론이다. 학교와 동네는 물론 학원에서도 언젠가는 마주칠 개연성이 높은 아이들이 놀이터에 모인다. 내 아이의 잠정적인 친구 혹은 동료인 셈이니 너그러워지고, 다정해지는 게 쉽지 않나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속내야 알 길이 없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세상이 험하다. 아이들을 맘놓고 내놓기가 두려워지는 일들을 종종 경험한다. ‘처음 보는 어른의 선의 혹은 부탁’은 유괴의 가능성일 수 있다고 가르쳐야 하는 게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는 현실이다. 부모 각자의 노력만으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아이들을 키울 세상은 이미 아닌 것 같아 답답하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 대부분이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놀이터에서 어른과 아이 사이에 오가는 선의, 관심, 친밀함의 관계가 내 눈에는 소박한 형태의 ‘공동 육아’로 보인다. 그것이 따지고 보면 내 아이를 중심에 둔 이기심의 발로일 수 있지만, 어른이나 아이나 즐겁고, 안심한다면 반가운 일이지 싶다. 그래서 놀이터에서의 ‘공동 육아’가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강구열 문화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