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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빨간 옷을 입은 철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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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01 22:35:04 수정 : 2015-07-01 22: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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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확신 가득 찬 6·25 국무회의 발언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 제왕적 스타일 굳혀
“나는 확신의 정치인이에요. 나는 ‘아마’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1980년 영국 보수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마거릿 대처 총리가 후보연설문 작성자가 보여준 초안에서 ‘아마’라는 단어를 모두 지우면서 한 말이다.(박지향 저, ‘중간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정치권을 향해 쏟아놓은 발언록을 보면서 떠오른 장면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다듬은 것으로 보이는 그 글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치는 국민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지 자기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표현도, 어조도 확신에 찼다.

황정미 논설위원
대처는 박 대통령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원칙과 확신의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출신, 정치 이력,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그들에게서 풍기는 강한 카리스마는 비슷하다. 철의 여인이라 불린 대처에 빗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2012년 대선에 도전한 박근혜 후보 기사를 실으면서 ‘빨간 옷을 입은 철의 여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최근 국내외에서 인기를 끈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원작의 탄생 배경이 대처 시대다. 원작을 쓴 마이클 돕스는 1987년 총선 당시 대처 선거 참모장이었다. 그는 작가 후기에서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대처는 화가 치밀어 폭발했고, 부당하게 잔인했다. 은유적 핸드백으로 몇 번이나 강타당한 뒤 수영장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와인 세 병을 마시고 인물과 플롯을 떠올렸다”고 썼다. 여당 상원 원내총무인 프랜시스 어카트란 인물이 총리를 제거하는 것.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린 작품이다.

요즘 여의도에서도 한 편의 정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파동은 여권의 권력투쟁 서막이다. 대통령이 강한 어조로 여당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언급한 것도, 친박 세력이 똘똘 뭉쳐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하고, 버티는 유 원내대표 주변으로 비박계 의원들이 슬슬 뭉치는 것도 드라마틱하다. 내년 총선 공천권을 누가 갖느냐가 갈등의 핵심이니 어느 쪽이든 쉽게 물러설 수 없다.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지 않느냐”는 김무성 대표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승부사 기질이 강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배운 사람이다. YS는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만들 수는 없어도 못하게 할 수는 있다”는 걸 몸소 실천한 대통령이다. 자신을 ‘배신’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떨어졌고, 야당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데다 확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 박 대통령과 맞서 내년 총선, 후년 대선을 치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파동의 정치적 승자는 박 대통령이다. 이미 비박계 지도부의 기세는 꺾였다. 그래서 걱정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이 그의 정치 스타일을 요지부동으로 만들 공산이 커서다. 한 여당 중진의원은 4·29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압승이 대통령에, 여당에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정치적, 정책적 실패에도 국민은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굳힐 것이란 지적이다. 그래서일까. 박 대통령은 야당은 물론 여당 지도부도 상대하지 않고 국민을 향해서만 말한다.

권력 1인자를 권모술수로 무너뜨리는 건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다. 대처를 추락시킨 건 2인자의 도전도, 거대한 음모도 아니었다. ‘중간은 없다’의 저자는 대처가 자신을 무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위기가 왔다고 했다. 오랜 정치적 성공이 낳은 제왕적 스타일이 근본 문제였다는 것이다. 당과 동료와 멀어진 지도자를 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 파동을 지켜보며 든 의문이다.

황정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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