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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독자에게 쓰는 것"

입력 : 2015-07-02 19:55:51 수정 : 2015-07-02 19: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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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20여년 만에 첫 소설집 ‘꽃밭’ 출간한 김희저 작가
“어멍! 나 장개 디레줘! 뒷집 성도 각시 있고 서울 성도 각시 있는디 나는 왜 각시가 없당가? 나도 각시 얻어가꼬 한 이불 속이서 살고 자풍께 장개 디레줘!”

웜매, 또 지랄났고만. 저 염병허다 급살맞을 놈의 셰끼가 껀뜩허믄 저 소리여. 비 온단 말도 못들었는디 날궂이 헌당가? 빙신이 육갑헌다고 뭔 장개 디레 달라고 사람을 부지 못허게 볶으까? 가다가다 벨착시런 꼴 다 본당께!

여기까지는 소설가 김희저(59)가 등단 20여년 만에 처음 낸 소설집 ‘꽃밭’(솔)의 표제작 중 인용부호 없이 인용한 한 대목이다. 평론가 임우기는 책 뒤에 붙인 해설에서 이 작가를 ‘방언적 작가’라고 명명했거니와 김희저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차지게 흘러간다. 어린시절 뇌염에 걸려 장애가 있는 귀한 아들이 베트남이나 필리핀 처녀들을 데려와 장가보내는 옆집들을 시샘하는 사연이다.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의 능청스러운 충청도 사투리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참을 수 없는 행간의 느꺼움으로 해학 사이에서 울먹이게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기존 소설 형식을 떠나 지문 없이 판소리체로 썼다.

등단 20년 만에 첫 소설집을 펴낸 ‘함평천지’의 작가 김희저. 그는 “원통한 사람들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게 내 소설의 정조”라며 “그 이야기가 하소연으로 끝나면 듣기 싫으니 익살과 해학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접하고 한달음에 그이가 산다는 전남 함평으로 내려갔다. 이런 작가가 어찌 20년 넘도록 소설집 한 권 못 냈을까. 그이는 짐짓 “책을 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199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엇모리’를 응모해 당선됐을 때도 결과에 연연하는 글쓰기의 욕망으로부터 내면이 자유스러워질 때까지 기다리다 처음 응모한 결실이었다고 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써놓은 장편과 단편들을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키높이는 충분히 넘을 거라고 했다. 글쓰기는 누구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독자에게 쓰는 글이라고 했다. 매일 밤, 조부가 그랬던 것처럼 한 평짜리 공간에 들어가 새벽이 올 때까지 글쓰기를 해왔다고 했다.

등단 20년 만에 나온 이번 그의 첫 소설집에는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방언으로 쓰인 단편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나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언어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특별히 방언 그 자체를 소설 언어로 특화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평강공주는 울보였다’나 ‘청로홍적’ 같은 작품들은 이른바 표준말로도 충분히 독자들을 견인해내는 힘을 지녔다.

이번 소설집에서 김희저의 특질을 잘 반영하면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괘종시계’ 같다. 같은 동네에 살던 ‘용매할매’ 이야기다. 그네의 이름만 빌려왔을 뿐 내용은 다르다는데, 하루 이틀 보이지 않아 담 넘어 들어가면 고독사가 있는 현실을 다룬 농촌 풍경이다. 질펀한 함평 사투리와 배꼽을 잡게 하는 해학이 빛난다. 명창 임방울이 ‘함평천지’를 단가에 담아내 사실 판소리에서는 함평 사투리가 ‘표준말’로 통용된다고 하니, 이 기준으로 본다면 그네는 드물게 표준말을 구사하는 작가인 셈이다. 좁은 지면이지만, 열 마디 말보다 소설에서 ‘붕알시계’로 부른다는 ‘괘종시계’ 한 자락을 인용하는 게 더 친절할 듯하다.

“아래끼 삭신이 하도 쑤셔서 꼽새영감 약방이 가서 삭신 안 아픈 약 달라고 헝께 인자 다른 것은 약이 없다고 험서로 잔디지름이나 받어 묵으라고 허덩만! 공동산 영감 묏등으가 잔디가 자르르 허단 말시. 그놈 훑어다 지름 짜 묵으먼 아픈 삭신이 말짱 나슬랑가?”

“할매, 사람이 땅속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으먼 잔디지름 받어묵는 것 아니다요? 뭔 잔디지름 짜는 기계가 있겄소?”

이 소설집에는 위에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임방울이 현실로 걸어나오는 ‘엇모리’, 원통한 사람들의 눈물을 소재로 권력의 본질을 들여다본 ‘평강공주는 울보였다’와 ‘물’ ‘공자의 유한시대’ ‘버드숫골 사람들’ ‘빈대떡’ ‘청로홍적’ ‘풀각시’ ‘유령하루’ 등이 실렸다. 문학권력이라는 수사가 횡행하는 이즈음, 이름도 얼굴도 모두 가리고 나와 노래만으로 승부를 거는 ‘복면가왕’처럼, ‘복면작가’ 무대가 열린다면 김희저는 어느 라운드쯤에 복면을 벗게 될까.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함평=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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