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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당신의 여행을 방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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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03 22:03:49 수정 : 2015-07-03 22: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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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라도 ‘스마트폰을 끄라’
과도한 셀카 공유로 관계 망칠 수도
한 항공사 요청으로 여행 관련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여행 전문가가 아닌 내가 여행을 효율적으로 잘하는 법에 대해 말한 건 아니다. 그저 여행의 의미를 일상을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어떻게 쉴 것인가’에 집중돼 있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건 단 하루라도 ‘스마트폰의 버튼을 끄라’였다.

인스타그램은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사진을 올리는 플랫폼이다. 해마다 이 플랫폼은 사진의 톤과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만들고 있으며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할 것을 독려한다. 사진이 찍힌 장소나 사진 속에 있던 친구들은 종종 사진 아래 태깅(tagging)되는데, 최근 ‘미국 10대가 본 SNS’라는 글을 보면 인스타그램은 10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다. 

백영옥 소설가
여행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여행 사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일단 여행 사진을 파리에 가면 에펠탑을 찍거나 뉴욕에 가면 자유의 여신상을 찍는 것쯤으로 정의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할 만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사회에 살면서 특이한 현상 하나가 생겼다. 세상 모든 배경에 ‘내 얼굴’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셀피(selfi·셀카의 영어식 표현)다. 2013년 말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셀피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진귀한 셀카가 차고 넘친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셀카를 찍다가 비명횡사하는 일까지 종종 발생하는데, 뉴스만 검색해 봐도 당장 여러 사례가 등장한다. 2014년 8월, 포르투갈 호카곶에서 여행 중이던 폴란드인 부부가 셀카를 찍다가 추락해 숨졌다. 그들은 다섯 살과 여섯 살 두 아이의 부모였다. 이사벨라 프라키올라라는 이탈리아 소녀는 해안 절벽에서 셀카를 찍다 18m 아래로 떨어졌다. 멕시코에선 권총이 장전된지도 모르고 셀카를 찍다가 스스로를 쏴 죽인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일도 있었다. 나사의 우주비행사가 국제우주정거장을 수리하는 우주유영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이 올린 일도 있다.

이토록 극단적인 셀카의 대부분은 여행 중에 찍힌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려는 본질도 여기에 있다. 이제 ‘셀카’ 속 ‘나’는 (자기 성찰적) 여행을 방해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 됐다. 거칠게 말해 파리의 ‘에펠탑’이든, 뉴욕의 ‘자유여신상’이든 내 얼굴의 배경지로만 기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여행을 느끼지 못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에 중독됐다.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라는 책에는 이 셀카 열풍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 버밍엄대 데이비드 호튼 교수는 페이스북 사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연구를 통해 “연인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는 사진을 많이 공유할수록 둘 사이의 친밀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애정의 증거로 셀카를 많이 공유하는 커플일수록 오히려 관계가 나빠진다는 것이다. 셀카는 거울을 보듯 나 자신을 도취적으로 바라보는 것이지만, 동시에 타인에게 나를 노출시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층적이다. 하지만 이 과도한 행위가 오히려 관계를 망치거나 혹은 나 자신의 여행을 망치는 가장 큰 이유라면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며칠 전, 안동에서 자신의 셀카를 찍느라 정작 고택의 아름다움에 무심한 커플을 목격했다. ‘남는 건 사진뿐∼’이란 말은 과거의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많은 사진을 찍느라 ‘나’ 자신을 공간에서 제외시킨다. 내가, 모든 사진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내 얼굴이, 내 여행을 방해하는 가장 큰 훼방꾼이라는 아이러니가 스산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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