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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얻은 이름 석자가 제 개런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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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03 22:01:39 수정 : 2015-07-04 00: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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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10년째 연극인복지재단 ‘무급 이사장’ 배우 박정자의 2막 최근 연극 배우 김운하(본명 김창규·40)씨가 서울 성북구의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린 그는 한 평 반 고시원에서 홀로 세상을 떴다. 배우이자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인 박정자(73)씨를 만난 날은 김씨의 비보가 전해진 다음날이었다. 박 이사장은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의 빚을 지는 기분”이라며 착잡함과 무력감에 말을 줄였다.

김씨처럼 어려운 연극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연극인복지재단이 올해로 설립 열 돌을 맞았다. 박 이사장은 “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지만 복지재단의 존재만으로 연극인들에게 위로와 의지가 된다”고 전했다.

올해로 설립 열 돌을 맞은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의 박정자 이사장은 “연극은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살아남을 것”이라며 “연극인들이 서로 아픔을 나누고 사람답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남정탁 기자

연극인복지재단은 10년 전 연극인들이 순수하게 힘을 합쳐 만들었다. 모든 연극인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였다. 박 이사장과 배우 윤석화, 무대미술가 이병복이 1000만원씩 추렴해 3000만원으로 재단설립 허가를 받았다.

박씨는 출범 때부터 줄곧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재단을 맡을 생각이 없었다.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그는 지금껏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바쁘기도 했거니와 조직을 맡는 것도 체질에 맞지 않았다. 초대 서울연극협회 회장으로 뽑힌 연출가 채승훈이 급하게 그를 찾아와 이사장직을 부탁했을 때 잠시 망설였다. 결국 제안을 수락한 건 ‘봉사하자’는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연극을 통해 이름 석자를 가졌으니 연극을 통해 봉사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생각했어요. 냉수 한 컵 얻어먹으면 족하다고 여겼죠. 우리는 이사회를 해도 칼국수 한 그릇 먹고 끝나요. 그래서 더 아름답죠. 이게 우리 살림 철학이에요. 10년간 쓴 대학로 사무실도 윤석화씨가 거의 무상으로 빌려준 덕분에 월세를 아낄 수 있었어요.”

박 이사장은 10년간 연봉 한 푼 없이 일했다. 이름만 걸쳐놓은 이사장이 아니었다. 기부금 좀 내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하기 위해 발에 불이 나게 뛰었다. 기부금, 지원금을 받으려면 참석해야 하는 회의와 행사, ‘오라가라’ 하는 실무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 발의에도 앞장섰다. 예술인들을 대동한 그는 국회 의원회관 방을 일일이 두드리며 법안을 만들어달라 설득했다.

“나 개인이 아니라 어려운 연극을 도와달라는 거니까 기부금 얘기하기가 부끄럽지 않았어요. 많은 분들이 마음을 보태 여기까지 왔죠.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게 금방 되는 게 아니에요. 모든 관계 맺기가 그렇잖아요. 삼성 같은 경우 10년간 공들인 끝에 뜻이 통했어요. 1년에 1억5000만원씩 지원하기로 했죠. 한분 한분이 다 소중한 기부자예요. 오늘도 은퇴한 교수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연금 중에서 2만원을 기부하겠다고 해서 오히려 제가 말릴 정도였어요. 이럴 때마다 마음의 빚을 지는 것 같아요.”

박 이사장은 “소중한 기부들이 모였기에 재단이 투명해야 한다”며 “많은 연극인에게 도움을 줘서 그들이 연극인으로 살아가는 데 덜 자존심 상했으면 한다”고 했다. 십시일반 기부금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 재단의 1년 사업비는 10억원으로 불어났다. 지원 영역도 의료비, 보육, 역량 강화, 일자리 등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연극인들의 처지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서 한 달 수입이 100만원 아래인 연극인이 74%에 달했다. 복지재단 관계자는 “2008년 조사 때 연극인의 월평균 공연 수입이 36만원이었는데 지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며 “가장 처우가 좋은 공공극장 무대에 서는 앙상블(조연) 배우들이 3개월 연습하고 300만∼400만원을 받는데, 1년에 이런 공연을 두 번 하면 엄청나게 잘 번 축에 든다”고 설명했다. 연극 시장이 성장하지 않는 한 생활고는 연극인의 숙명처럼 붙어다닐 수밖에 없다.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연극 시장은 오히려 중·대형 공공극장 위주로 재편됐다. 살림이 어려운 소규모 극단이 설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배우 이석준은 지난 4월 서울연극제를 앞두고 “앉은 자리에서 영화 보고 음악 듣는 시대에 발품 팔아 티켓 사고 관람하는 일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라며 “스마트 시대에 어떻게 연극을 접목시켜 연결 고리를 만들지가 중요하다”고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 이사장은 그럼에도 연극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다. 복지재단이 10년을 이어온 것도 연극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연극은 아날로그예요. 디지털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날로그는 살아남아요.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연극은 살아남을 거예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이니까요. 그렇기에 우리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해요. 힘든 일을 모두 피해갈 수는 없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 아픔을 나누고 좀더 사람답게 사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너무 비굴하고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연극인들이 그런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게 우리 재단의 바람이에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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