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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재미동포들은 고국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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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06 01:34:17 수정 : 2015-07-06 04: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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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독도·동해 막강한 日 로비 맞서
고국 일을 내 일처럼 발벗고 나선 교포들
美 주류사회에서도 성공신화 이어 가길

얼마 전 일본 고위 인사가 미국을 방문했다. 그는 워싱턴 싱크탱크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넋두리를 풀어냈다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들은 잘 뭉치는데, 일본계 미국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위안부나 동해, 독도 문제 등 한·일 간 현안을 놓고 너나없이 나서 고국을 돕는 한국 동포사회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일본이 대미 로비에 연간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것도 이 같은 인식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2년 3월 부임해 처음으로 쓴 칼럼에서 워싱턴의 벚꽃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1912년 일본이 미국에 선물해 심은 벚꽃은 봄 한철 볼거리에 그치지 않았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미국 도처에서 벚꽃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 등에는 주로 일본이 마련한 문화 행사 안내가 실린다. 일본이 100여년 전 심은 벚꽃은 미·일 우의를 다지고 일본을 알리는 홍보대사와 다름없다.

워싱턴에서 소리 소문 없이 이뤄지는 일본 로비는 유명하다. 사사카와 평화재단이나 노무라재단 등을 내세워 미국 내 지일파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미 정치인들을 일본으로 데려가는가 하면 퇴직한 국무부나 의회 관계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 미 주요 대학에 연구비를 대고 로비업체 도움도 받고 있다. 각 싱크탱크 아시아 전문가가 일본통 일색이라는 데서도 일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난 40여개월간 경험한 재미동포 사회는 일본이 부러워할 만했다. 동포들은 고국 일을 제 일처럼 여기고 기꺼이 힘을 보탰다. 일본 정부의 로비 속에서도 미국 주요 장소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운 건 놀랄 만한 일이었다. 2010년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를 시작으로 뉴욕주 롱아일랜드 현충원,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와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정부청사 주변 등 곳곳에 위안부 기림비가 조성됐다.

2014년 2월6일 동해 병기 법안이 버지니아주의회를 통과할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찬성 81표, 반대 15표로 법안이 통과되자 의사당과 주변에 모인 교민 200여명은 환호성을 질렀다. 동포들은 법안이 각각 상원과 하원의 소위원회, 상임위원회, 본회의에서 다뤄질 때마다 워싱턴에서 1시간반 걸리는 리치먼드를 버스로 오가며 마음을 한데 모았다. 대형 로펌까지 고용한 일본 로비는 힘을 쓰지 못했다.

일본계 미국인(130만여명) 숫자는 한국계 미국인(170만여명)과 거의 맞먹는다. 그러나 우리 동포들처럼 한데 모이지 않는다. 2차세계대전 전범국으로서 과거사 탓이라는 설명이 유력하다. 2차대전 기간 중 일본계 12만여명이 강제 수용소에 격리된 아픈 경험이 있다. 이후 일본계는 철저하게 미국 사회로 스며들었다. 일본계 미국인이 일본계 배우자를 맞이하는 사례를 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박희준 워싱턴 특파원
재미동포들은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에 눈물 흘리고 기쁜 소식에 환호한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재미동포를 통해 들은 적이 있을 정도다. 고국을 돕기 위해 자비를 들여가면서 활동하는 동포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국이 잘돼야 자신들도 자부심을 지니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재미동포 사회에 이런저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되기보다 동포사회에만 매몰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고국이 동포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부에서 주는 포상 등으로 갈등이 빚어지는 일이 흔하다. 미국에 오는 정치인은 미국을 더 배우려기보다 동포 사회에 얼굴을 내밀려고 한다. 고국이 동포사회에 나쁜 환경을 조성한다고도 할 수 있다.

재미동포들은 언제나 고국에 큰 힘이었다. 하지만 재미동포 사회도 이제 변화할 때가 되었다. 고국만을 바라보면서 살 게 아니라 미 주류사회에서 성공신화를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요즘 재미동포 1·5세, 2세들을 중심으로 정치력 신장을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미국에서 한국계 연방의원, 한국계 대통령이 탄생할 날을 꿈꾸면서 이달 중순 귀국에 앞서 작별 인사를 미리 한다.

박희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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