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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사후 30년 만에 남한 땅 잠들다

입력 : 2015-07-05 23:32:26 수정 : 2015-07-05 23: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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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서 유해 온 지 21개월 만에
故 손동식씨 대전현충원 안장
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국군포로 고(故) 손동식씨 안장식에서 영현 봉송병이 영정과 영현을 안고 묘역으로 향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육군 9사단 소속 전투병으로 북한군과 싸웠던 고인은 포로로 붙잡혀 끌려가 1984년 북한에서 숨졌고, 2013년에서야 유해가 남한으로 송환됐다.
대전=연합뉴스
6·25전쟁 때 국군포로로 북한에 끌려갔던 고(故) 손동식씨의 유해가 4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탈북자인 딸 명화(53)씨의 노력으로 2013년 10월 유해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지 21개월 만에 영면할 자리를 찾은 것이다.

육군 9사단장 주관으로 거행된 이날 손씨 안장식에는 백승주 국방부 차관을 비롯한 국방부 및 군의 주요 인사들과 유족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국군포로 유해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송환돼 현충원에 안장된 것은 이번이 6번째다.

손씨는 6·25전쟁 당시 육군 9사단 소속 전투병으로 북한군과 싸웠으나 포로로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갔다. 함경북도 무산광산에서 힘든 삶을 산 손씨는 1984년 북한에서 숨졌으며, 명화씨를 포함해 북한에서 낳은 딸 3명은 2005년 탈북했다. 사망 당시 손씨는 명화씨에게 자신의 고향이 경남 김해라며 “내가 죽으면 고향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명화씨는 남한에서 북한인권단체들의 도움을 얻어 2013년 10월 중국을 거쳐 부친의 유해를 모셔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국방부가 생환 국군포로에 준하는 보상금을 지급해 달라는 유족 측 요구를 거부해 손씨의 유해는 그동안 딸 명화씨 집에 보관돼 왔다.

양측의 갈등은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국방부가 국군포로 유해 송환 비용을 실비 지원하며 해소됐다. 명화씨는 “국군포로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국군포로의 명예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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