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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한국도 포퓰리즘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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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06 20:32:29 수정 : 2015-07-06 20: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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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숨어 있는 포퓰리즘
그리스 사태 반면교사로 삼아야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 그리스 국민들의 아비규환을 지켜보면서 많은 한국 국민은 한국의 IMF 사태를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 한국인은 ‘금모으기 정신’으로 국가적 위기를 넘어섰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도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IMF 사태의 주범이던 금융권은 그 와중에도 퇴직금 잔치를 벌이는 등 매국적 행위를 했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생존하는 개개인의 힘은 그 모든 부담을 몸으로 이겨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스 하면 민주주의의 고향이 아닌가. 그 민주주의의 고향이 민주주의와 비슷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의해 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민주주의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감당할 경제적 토대와 도덕, 그리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이성이 없는 집단에게는 결코 자신의 아름다움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한국의 IMF 사태는 88서울올림픽을 치르고 국민들이 축제 분위기에 들뜬 가운데 급격한 정치적 민주화를 겪으면서 9년 만인 1997년 12월에 일어났다. 문민정부를 외치는 사이에 IMF라는 악마가 스며든 것이다. 그리스도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치르고 6년 만인 2010년부터 IMF와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지금도 억울한 것은 당시 한국은 그 사태를 극복하느라고 팔릴 만한 우량기업과 알짜 부동산을 헐값에 팔고, 금융권은 일본과 미국의 자본에 합병되어 금융자본주의의 종속상태로 완전히 들어갔으며, 수많은 국민들이 가족해체의 아픔을 겪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IMF 사태는 ‘IMF의 폭거’였다고 세계 금융가에서는 통한다.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인 삼성, 현대, LG, SK 등의 주식 중 50% 정도가 외국 투자자의 손에 넘어갔으며, IMF 사태를 극복했다고 하지만 실은 국력이 반 토막 났던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상승세가 있기 전에 보다 멀리 달아날 수 있었다면, 동아시아의 맹주가 될 수도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 후에도 한국 문화는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지만 포퓰리즘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포퓰리즘을 민주주의로 착각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 원인 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역사적 경험으로서 국민의 의식 속에 내재된 국가 지도층에 대한 불신과 국가권력에 대한 반체제적인 정서, 심하게는 무정부주의적인 측면마저 있다.

한국도 포퓰리즘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남북분단 상황과 연결되면서 한때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던 아르헨티나 등 남미 제국을 좌절케 한 사례와 흡사한 점도 없지 않다. 지금도 한국은 기로에 있다. 북한 지도층의 이탈이 점점 심화되고 있고, 분명 통일의 발자국은 다가오고 있는데, 막상 통일이 닥치면 그때 포퓰리즘을 어떻게 감당할지 별반 준비를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당시 IMF 체제를 한국이 어떻게 극복했느냐를 생각하면 건실한 산업화의 힘 덕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제국의 지원에도 국가부도 사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한국처럼 팔아먹을 기업과 산업이 부족하고, 관광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국가재정에도 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파르테논신전으로 상징되는 문화재와 에게해로 상징되는 자연풍광을 한꺼번에 재화로 팔 수는 없지 않은가. 유럽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그리스 민주주의를 플라톤은 걱정했다. 민주주의에 도사린 중우정치를 걱정했던 탓이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으로는 귀족주의를 택했다. 실지로 그리스 아테네는 민주주의 때문에 망했다고 볼 수 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일사불란한 스파르타를 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쟁과 민주주의는 상극인 것 같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화에서 유럽 문명의 부활을 꿈꾼 니체도 정치적으로는 귀족주의를 택했다. 그는 민중의 노예근성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도덕과 평등은 민중의 분노와 질투의 요구라고 규정했다. 무엇보다도 민중은 주인정신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니체는 주권적 개인을 존중한다.

그리스 문명은 유럽 사람들이 인류 문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과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 유럽 문명은 오늘날까지도 오이디푸스 신화를 비롯해서 그리스신화라는 텍스트에 자신들의 의식과 철학의 뿌리가 닿으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리스신화가 이집트 신화의 변형이라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블랙 아테나’가 그것이다. 블랙 아테나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테나 여신의 피부가 검다는 뜻인데 유럽 문명의 우수성의 바탕에는 그리스 고전 문명이 있다는 그리스 원조론에 반기를 든 책이다. 182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유럽 사람들은 이집트, 페니키아 같은 동방 문명의 영향으로 그리스 문명이 성립했다는 것이 일반상식이었는데 그 후 그리스 독창문명론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날조에는 서양의 식민주의와 우월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국가부도 사태를 보면서 브레튼우즈 경제체제의 한계, 그리고 장기적으로 서양 문명의 몰락을 보게 된다. 민주주의에는 분명 포퓰리즘이 숨어 있다. 우리도 이제 서양이 제공한 ‘민주/독재’라는 이분법의 유령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우리 식의 미래 문명,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주역이 될 꿈을 꾸어야 할 때이다. 그리스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자.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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