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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칼럼] 언어의 선용과 살맛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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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12 21:39:03 수정 : 2015-07-12 21: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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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인류 축복이자 분쟁의 씨앗
망언·악플 범람 땐 신뢰의 상실 초래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한다. 이때 이성은 계산과 언어의 능력을 포괄한다. 따라서 사람은 계산하고 말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계산과 언어 중에 특히 언어는 다른 어떠한 동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능력이다. 뇌의 기억 용량과 구강의 구조가 식별 가능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진화한 결과 사람은 손짓과 발짓의 몸짓에 이어 소리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언어는 인류가 문명을 이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분절음이 가능하지 않다면 고층건물을 어떻게 짓고, 우주에서 어떻게 교신을 하고, 고도의 세밀함이 요구되는 초정밀 과학기술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발화자가 애써 말을 전달하려고 해도 청취자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아’와 ‘어’만을 아무리 큰소리로 외쳐도 복잡하고 미묘한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사고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사고의 결론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면 타자와 공유할 수가 없다. 공유가 불가능하면 문명의 발달이 아무리 집적된다고 하더라도 그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고 그 깊이도 얕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언어는 인류가 이룩한 과학기술문명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말을 주고받는 언어환경을 세밀하게 관찰하면, 언어는 분명 인류의 축복이기도 하지만 갈등과 위기를 낳는 분쟁의 씨앗이기도 하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첫째, 일본의 정부 당국자들은 외교적으로 중요한 분기점을 맞이하면 잊지 않고 ‘망언’의 퍼레이드를 벌인다.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무책임과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단골로 주장했다. 최근 일본은 근대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 노동’의 여부를 두고 과거에 끝난 일로 간주하려고 해 한일 양국의 새로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둘째, 인터넷의 악플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예방책의 마련에도 그 위험성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인터넷의 공간이 열렸을 때만 해도 언로가 일방향성을 넘어 쌍방향성을 가지리라 예상하며 환영했다. 쌍방향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진보는 지금도 환영받을 만하다. 하지만 욕설, 비방 등 거의 배설수준의 언어는 특정 사건의 관련자, 공인으로 간주되는 연예인의 사생활 등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사냥꾼들은 추격의 결과를 실시간으로 알리며 따끈한 정보를 생산하는 영웅으로 등극한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 개인의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이고 인격은 땅으로 곤두박질하게 된다.

셋째, 선거철이 되면 입후자들은 온갖 선심공약을 내세운다. 입후자들은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자신을 강이 없는 곳에 다리를 지어 불가능한 일조차 가능하게 하는 신적 존재로 만든다. 특히 입후자들은 선거 초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할 수 있는 개념을 선점해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선거에 당선되면 진실한 사과도 없이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했던 언약을 다시 불가능으로 돌려놓는다. 언어는 의미를 실어 나르지 못하고 상대와 차별성을 과시하는 브랜드가 된다.

우리는 망언, 악플, 브랜드로 쓰는 언어환경에 자주 노출되고 그런 사태를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으레 “그런 것 아니냐”라는 체념수준에 이르렀다. 우리는 “잘못된 줄 알지만 상대가 저러하니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라는 침묵의 동조자가 돼 버렸다. 언어가 선용되고 있음에도 악용되는 현상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무기력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가 말을 배울 때 ‘엄마’를 수없이 되풀이하게 해 식별 가능한 소리를 내도록 훈련을 거듭한다. ‘엄마’를 ‘임마’라고 말하면 ‘임마’가 아니라 ‘엄마’라고 교정한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망언, 악플, 브랜드의 언어도 체념이 아니라 교정이 필요하다. 언어의 위기가 지속되면 신뢰의 상실이 생기고, 신뢰의 상실이 지속되면 함께 살맛이 나지 않게 된다. 밥맛을 돋우는 요리 프로그램처럼 살맛을 돋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때다. 그 프로그램은 언어를 허투루 쓰지 않고 제값대로 쓰는 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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