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편완식이 만난 사람] "난 예술가 아닌 디자이너… 패션 통해 창작의 시너지 무한 발휘"

관련이슈 편완식이 만난 사람

입력 : 2015-07-13 20:35:23 수정 : 2015-07-14 10:18:2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국서 亞 첫 전시회 헨리크 빕스코우 인터뷰 패션과 건축이 미술관으로 걸어 들어오는 풍경은 이젠 더 이상 생소하지가 않다. 창작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순수미술과 한 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순수미술이 몰락한 양반처럼 초라하게 보일 정도다. 인문학의 처지를 떠올리게 해준다. 그렇다고 비관만 할 게 못된다. 서로는 서로에게 자극제가 되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창작의 자양분이 돼주는 것은 순수미술이다. 한 개인이 두 영역을 넘나들며 창작의 시너지를 배가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덴마크 패션디자이너 헨리크 빕스코우(Henrik Vibskov·43)도 그런 사람이다. 오는 12월 31일까지 대림미술관에서 전시를 갖기 위해 서울에 온 그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가슴 조형물로 꾸민 전시장에 서 있는 헨리크 빕스코우. 음악에 대한 관심이 패션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그는 ‘열린 패션’으로 독창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당신은 아티스트인가, 아니면 패션디자이너인가.

나는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요즘 뉴욕에 가면 다들 자신을 아티스트라 소개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젠 아티스트란 의미가 공허하고 붕 떠있는 느낌이다. 너무 뻔한 것 같다. 창의적인 사고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나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불리고 싶다.

아티스트냐 디자이너냐 하는 질문보다는 우선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본질인 것 같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어떤 작업을 하면서 행위 자체를 분석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작업들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실행해 내느냐가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패션도 예술인가.

나는 패션을 예술이라고 보지 않는다. 예술이나 패션은 스토리텔링이나 특정 관점을 사물에 투영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그러나 패션을 보고 예술작품이라 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패션은 예술, 음악, 퍼포먼스 등과 같은 나의 모든 관심사를 하나로 아우르는 좋은 우산과도 같다. 단순히 입기 위한 ‘옷’이 아닌 ‘자유롭고 열린 표현’으로써 패션이 예술의 모든 영역으로 무한하게 확장되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

이를 위해서 나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대해서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창의성’을 미리 설정하거나 ‘공식’을 세우지도 않는다. 잘 모르는 세계에 스스로를 던져 놓는 것을 즐기며, 그 속에서 즉흥적으로 배우고 새롭게 적응해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 어떤 작업을 할 때 미리 분석해서 다가가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실행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후각과 미각 요소까지 동원한 빕스코우 런웨이 무대. 런웨이 무대를 ‘퍼포먼스 아트’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림미술관 제공

―한국 전시에서 무엇을 보여주나.

우선 민트 향이 가득한 전시장이 있다. 막대풍선처럼 생긴 30m 길이의 민트색 구조물이 가득 설치돼 있고 민트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2008년 선보였던 패션쇼 런웨이를 재연출한 것이다. 당시 ‘민트’라는 주제 아래 후각과 미각이라는 요소를 패션쇼에 최초로 적용하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다. 관람객에게 민트 음료도 서비스했다. 민트 색상이 의미하는 바를 모두 아우르고 싶어서 했던 시도다. 민트 색상에서 발현된 아이디어로 창작한 것이다.

2007년 런웨이에 모델들이 누워있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던 패션쇼 ‘부비 컬렉션’에 사용됐던 가슴 오브제들도 등장한다. 전시장 벽을 채운 400여개의 가슴 조형물 사이사이에 나의 대표 의상 40여점도 내걸었다. 가슴 조형물이라는 오브제는 어머니, 고향 같은 의미와 함께 남자아이들의 꿈을 실현해주는 섹슈얼한 의미도 지니고 있다. 패션쇼 당시 가슴 조형물로 에덴동산을 연출했는데, 이 컬렉션을 보기 위해 2000여명이 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과테말라에서는 죽은 이와 소통하기 위해 컬러풀한 아름다운 연을 띄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처럼 아름다운 플라밍고의 긴 목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런웨이 천장에 매단 모습도 이채로울 것이다. 죽음을 생각해 보는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옷의 재료와 제작 방식에 대한 실험과 연구를 반영한 작품도 볼 수 있다. 나일론 양말을 집어넣어 다양한 구조물로 표현한 작품, 울을 다양한 형태로 실험한 작품 등이 그것이다. 옷이 주체인 몸에 대한 관심사 차원에서 가면을 쓴 나체사진과 관절인형 설치작품도 보여준다. 작품 제작과정과 패션쇼 준비과정을 담은 사진도 전시된다.

―세계 패션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미술관이 나를 초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북유럽 패션 디자이너로 유일하게 매년 파리 패션 위크에서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다. 2003년 이래 형식을 파괴하는 충격적인 패션쇼가 사람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세계 3대 패션 스쿨) 졸업작품이 덴마크 국영방송에서 중계될 정도였다. 나는 패션을 의상뿐만 아니라 순수예술과 음악 등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것이 나의 패션세계에 창조력을 부여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늘 강렬한 색감과 독특한 디자인, 그리고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사람들에 즐거움을 선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패션쇼는 나의 모든 영감과 예술적 관심사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예술이다. 예술적 영감과 실험적인 시도가 패션을 연결고리로 무한하게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헨리크 빕스코우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주목 받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이다. 패션뿐만 아니라 사진,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순수예술 영역에서 꾸준히 창작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유럽 일렉트로닉 밴드 ‘트렌테묄레르’의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이기도 한 그는 최근에는 아이슬란드의 싱어송라이터 비에르크(Bjork)의 오페라 무대와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유명인에게 옷을 제공하지 않는 그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시규어 로스(Sigur Ros), 비에르크(Bjork), 루 리드(Lou Reed),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등 이미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이 그의 의상을 즐겨 입을 만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유니크한 감각을 인정받고 있다.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