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백영철칼럼] 소인혁면의 시대

관련이슈 백영철 칼럼

입력 : 2015-07-16 21:19:35 수정 : 2015-07-16 21:39:0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유승민 파동 이후 웰빙당 된 새누리 원유철 변신이 웅변
40% 지지율에 취하면 내년 총선 그르칠 수도 심각성 제대로 봐야
한국 정치사에서 배신 논쟁은 ‘박근혜 대 유승민’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무현 대 고건 ’논쟁도 소란스러웠다. 고건은 2007년 대선에서 유력 주자였으나 차별화에 분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냥 놔두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내가 고건을 초대 총리로 임명한 것은) 잘못된 인사”라고 선공하자, 청와대 참모와 측근들이 벌떼처럼 나서 배신자라며 융단폭격 퍼붓듯 했다. 고건은 “노 대통령 말은 자가당착이자 자기부정”이라며 두 번 정도 맞대응하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후보직을 사퇴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고건을 무너뜨린 뒤 이렇게 훈수했다. “정치를 하려면 과감하게 투신해야지 좌고우면해서야….” 시종 노무현답다. 하지만 지지율 10%대에서 헤매던 현직 대통령이 “아직 나에겐 힘이 있어!”라고 과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패배하는 길이었다. 노무현이 고건을 포용했다면 2007년 대선에서 여당이 500만표 이상의 차이로 대패하는 일도, 퇴임 후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리는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완벽하게 축출했다. 정치 10단의 경지다. 어제 청와대 회동은 유례없이 화기애애했다. 승전의 전리품으로 이만 한 것이 없다. 당 지도부들은 이구동성으로 당·청관계 복원에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유승민이 사라진 이후 당·청은 외형적으로 한 몸이 된 것이다. 망외의 소득도 크다. 임기 말까지 여당에서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 그러나 자만은 금물이다. 노 전 대통령처럼 자신감이 과도하면 사태를 그르치게 된다. 완승은 자만을 부르기에 특히 경계해야 마땅하다. 손무가 손자병법에서 비전(非戰), 비공(非攻)을 시종여일 설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당이 후유증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청와대와 다른 의견은 싹이 잘리고 내부 비판 문화는 사라질 판이다. 소신과 자정기능, 다양성이 사라진 자리에 충성심과 맹종, 일사불란이 들어설 것이다. 변화보다는 수구, 활력보다는 눈치가 넘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당이 웰빙당으로 바뀌면 그간 해온 혁신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백영철 논설위원
새 원내대표의 변신은 시사점이 크다. 원유철은 집권당 원내대표가 되자마자 5개월 전과 180도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2월4일, 라디오방송 인터뷰)→ “박근혜 대통령 생각에 동의한다. 증세 없는 복지 방향으로 가야 한다.”(7월15일, 라디오 방송 인터뷰) “민심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당이 중심에 서야 한다.”(1월28일, 정책위의장 출마선언)→ “당과 청와대 사이는 3권분립과는 다른 한 뿌리의 운명공동체다.”(7월14일,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된 직후) 요직을 차지했다고 해서 자신의 정책적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일은 흔치 않다. 원유철의 식언을 보면서 배신과 소신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군자표변(君子豹變)’이란 말이 있다. 주역에 나온다. 군자는 허물을 고치는 것이 빠르고 뚜렷하다. 원유철의 변심은 군자표변일까? 주역에는 ‘소인혁면(小人革面)’이라는 말도 뒤따라 나온다. 군자와 대인은 잘못을 과감하게 고치지만 소인은 간신배처럼 얼굴빛만 고칠 뿐임을 지적한다. 눈치를 살피며 면종복배하는 소인배 정치인은 유승민 파동 이후 더 많아지는 듯하다.

유승민이 중도층에서 지지를 받는 대권주자의 반열에 오른 것은 정치는 생물이라는 명제를 재확인시켜준다. 향후 총선과 대선은 인물과 정책에서 역대 선거 이상으로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이 유승민 파동의 굴레에 얽매여 중도를 아우르는 담론을 배척하면 반쪽짜리 정당 신세를 면치 못할 수도 있다. 새누리당의 당지지율이 40% 이상 나오고 있고 야당은 지리멸렬한 상태다. 무슨 걱정인가 하고 눈을 흘기겠지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법이다. 지지율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소인배가 득실거리는 웰빙당의 미래는 빤하다. 망조밖에 더 있겠는가.

백영철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