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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한방울 안 섞였어도 형제愛는 끈끈했다

입력 : 2015-07-24 03:33:07 수정 : 2015-07-24 03: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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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형제의 밤’ 대안가족 이야기는 신선하지 않다. ‘혼인·혈연관계 없이도 따뜻한 가족을 이룰 수 있다’ ‘부부와 자녀로 이뤄져야 정상 가족인가’라는 주장이 제기된 건 이미 수십년 전이다. 그럼에도 대안가족이 감동을 주는 건 혈연조차 서로 등을 돌리는 세태 때문일 것이다. 내 피붙이와도 악다구니하는 시대에 생판 남이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은 저절로 온기를 느끼게 한다. 연극 ‘형제의 밤’이 잔잔하고 산뜻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이 지점이다.

‘형제의 밤’은 부모의 갑작스러운 사고사로 시작한다. 20대 형제 둘만 세상에 남겨졌다. 그런데 관계가 모호하다. 엄마와 아빠는 각자 자녀를 데리고 재혼했다. 부모가 사라진 지금 두 사람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다. 수동은 엄마가 데려온 자식이다. 4수 끝에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 어학연수까지 다녀왔지만 지금은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백수다. 아빠가 데려온 연소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수동과 달리 괄괄한 성격에 무식하고 낭만적이다.
‘형제의 밤’은 부모가 갑자기 세상을 뜬 뒤 남겨진 재혼 가정의 형제가 서로 옥신각신하다 가족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담았다.
수현재컴퍼니 제공

부모가 떠난 지금 두 사람은 같이 살 이유가 없다. 이제 남인 데다 별 우애도 없다. 철이 덜 든 20대 형제는 유산을 나누며 치졸하게 옥신각신한다. 늘어난 바지를 입고 집에서 뒹구는 형제가 폼 나거나 멋있을 리 없다. 연극은 구질구질한 생활의 단면들을 소소하게 보여준다. 치질이 걸린 형제의 엉덩이를 집중 공격하고 집 안에 하나 남은 우산을 양보하는 대가로 50만원을 부르는 식이다. 장삼이사의 일상이 그렇듯 어찌 보면 정감 있고 어찌 보면 한심스럽다. 피식 웃는 사이 극은 하나둘씩 수수께끼를 던진다.

부모는 왜 하필 핀란드에 가려 했을까, 집을 물려받는 수연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샴쌍둥이 그림은 정체가 무엇인가. 하나씩 실마리를 따라가며 형제는 진실에 접근한다. 무심했던 형제는 이를 통해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난다.

2인극인 ‘형제의 밤’은 과장되거나 극적이지 않다. 어제나 오늘이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의 일부를 베어낸 듯하다. 음악과 조명 사용은 최소화했다. 작위적이거나 억지스럽지 않게 여운을 남기는 것이 장점이다.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사이 해변에 바닷물이 차오르듯, 형제의 토닥거림을 보고 있노라면 차곡차곡 감정이 쌓인다. 최루탄처럼 감정을 흔드는 드라마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담백한 1, 2인극은 연기와 대본에 상당 부분 기대야 하는 위험 부담을 안는다. 이 작품 역시 자극히 최소화한 자리를 배우 두 명의 연기가 채운다. 아쉬운 점은 배우와 캐릭터가 살짝 들떠 있는 듯한 연기다. 연기가 배역에 안정적으로 밀착한 느낌이 덜하다. 젊은 극단의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수동 역할은 배우 조선형·권오율, 연소 역할은 김두봉·이교엽이 맡는다. 함께 무대에 서는 조선형·김두봉은 꾸미지 않은 듯 심드렁하고 잔잔한 톤으로 연기한다. 반면 권오율·이교엽은 대사의 강약을 살리면서 긴장감을 강조해 대비가 된다.

‘형제의 밤’은 예산·인력 부족으로 사라져가는 좋은 작품을 개발하는 수현재컴퍼니의 ‘위드 수현재’ 시리즈 중 하나다. 제작사 으랏차차스토리가 2013년 초연했다. 관객 반응은 좋았지만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악재로 어려움을 겪었다. 내달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한다. 3만원. (02)766-6506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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