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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 '오르페오' 한국 초연

입력 : 2015-07-24 09:23:40 수정 : 2015-07-24 09: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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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바로크 오페라 맹수를 온순하게 만들고 바위도 눈물 흘리게 했다는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의 음악. 바로 그 음악이 지난 23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를 메운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이건용)이 국내 초연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오르페우스'의 이탈리아어 표기)였다. 1607년에 작곡된 '오르페오'는 세계 최초의 오페라는 아니지만, 초창기 오페라 중 가장 성공적이고 획기적인 작품으로 음악사에 기록됐다.

이번 공연은 이 작품이 지닌 언어와 음악의 놀라운 생동감을 초심자, 애호가, 음악학자 등 다양한 수준의 관객들 모두에게 확인시킨 탁월한 계기였다.

이건용 단장, 김학민 연출가, 양진모 지휘자, 정경영 바로크음악감독 등으로 꾸려진 제작진이 1년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한 결실이다.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지휘하면서 쳄발로를 연주할 수 있는 지휘자와 몬테베르디 전문학자인 음악감독이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음악적 수준이 높은 공연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연주를 맡은 '바흐 콜레기움 서울'은 쳄발로나 류트 같은 원래의 바로크 악기를 제외하면 굳이 당대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기품 있고 정제된 연주로 초기 바로크 오페라 음악의 특성과 장점을 충분히 전달해 주었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오르페오 역의 바리톤 한규원은 호소력 있는 음색과 명료하고 깊이 있는 표현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극의 긴장과 밀도를 유지해냈다.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투명한 미성을 지닌 소프라노 정혜욱은 음색 뿐 아니라 외모와 연기 면에서도 에우리디체 역에 적격이었고,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의인화된 '음악(La Musica)' 역의 소프라노 정주희는 등장하자마자 관객을 무대에 몰입시켰다.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은 2막에서 에우리디체의 죽음을 알리며 고통과 절망에 사로잡히는 메신저 역, 4막에서는 하계의 신 플루토네의 관능적인 아내 프로세르피나 역을 맡아, 이 완전히 상반된 두 인물을 강렬하게 연기해 인기였다.

두 명의 카운터테너도 청량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르페오를 하계 입구로 안내하는 의인화된 '희망(La Speranza)' 역의 이희상, 목동 역의 유혁이었다. 다른 목동들인 테너 김지훈, 강윤광, 베이스 조병수도 각자 또는 함께 어울려 귀에 남는 훌륭한 가창을 들려줬다.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뱃사공 카론테 역의 베이스 박준혁은 베이스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는 이 배역의 저음부를 무난히 소화했고, 플루토네 역의 바리톤 김인휘와 아폴로 역의 베이스바리톤 조규희 역시 잘 다듬어진 기품 있는 가창으로 작품을 빛냈다.

그 밖에도 님프, 마을처녀, 아낙네 역을 맡은 앙상블 전원과 유연하고 날렵한 무용수들은 공연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특히 에우리디체의 죽음에 대한 오르페오의 탄식 직후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애도의 합창은 몬테베르디 시대의 감상자들에게 이 작품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을까를 충분히 짐작하게 했다.

'오르페오'는 작곡가가 악보에 빈틈을 많이 남겨놓던 시대의 작품이어서, 연주할 수 있는 상태로 악보를 완성해가는 과정부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오페라 연출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던 시대의 작품인 까닭에 연출가에게도 막막한 작품일 수 있다. 이번 무대는 일반적인 '오르페오' 연출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세심한 디테일과 넘치는 활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계속 사로잡는 데 주력했다.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연출가 김학민과 무대디자이너 신재희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낙원과 하계 사이의 여정을 보여주는 길들을 설정하고, 통제와 감시의 세계인 하계를 상징하는 거대한 눈을 무대 위에 설치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차단문을 통해 외부와 단절된다. 검은 그물 옷과 그물 가면 차림으로 등장하는 하계 정령들은 삶에 지쳐 무기력해진 채 머릿속만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혀 지옥에 갇힌 듯 살아가는 현대인을 연상시켰다.

무대는 전반적으로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쓰였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전체적인 색조였다. 결혼을 축하하는 목동, 님프, 마을 사람들의 자연을 닮은 파스텔 톤 의상은 형태는 아름다웠지만, 색상이 너무 다채롭다 보니, 음악의 전아함에 비해 무대 분위기는 깊이가 부족해보였다. 전체적인 조명과 영상은 잘 짜였지만, 하계 장면에서는 붉은색에서 보라색에 이르는 무지개색 스펙트럼이 쓰여 다소 산란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신화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대본의 여러 구절은 몬테베르디 당대의 귀족들에게 주는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번역 자막이 훌륭해 그 교훈이 우리 관객들에게도 설득력이 있다.

이번 '오르페오' 초연의 성공을 기반으로 세계 오페라극장의 바로크 열풍이 우리에게도 전염되길 희망해본다. 공연은 26일까지.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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