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카와 주노스케 지음/이향철 옮김/역사비평사/3만원 |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1996·사진)는 20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학자이다. 26살 때 이미 도쿄대학 법학교수가 되면서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이다.
에도시대(도쿠가와 막부)의 사상가 오규 소라이가 일본 근대성의 뿌리였다는 학설을 제기해 천재라는 찬사도 받았던 사상가다. 그는 패전 이후 깊은 좌절에 빠져 있던 일본 학계와 사상계의 흐름을 주도했다. 미국 학계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일본의 자존심 같은 학자이다.
저자는 마루야마 등 후쿠자와 미화론자들에 의해 분칠된 그의 민낯을 실증하기 위해 일련의 책쓰기를 시작했다. 그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전쟁론과 천황제론(2006)’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묻는다(2011)’ ‘후쿠자와 유키치의 교육론과 여성론(2013)’ 등 5권을 책을 펴냈다.
저자에 따르면 후쿠자와는 백성을 ‘바보와 병신’에 비유하면서 종교로 마취시키라고 요구했다. 배우고 가난한 백성이 가장 위험한 존재라며 지식층과 자본가의 각성을 요구했고, ‘국권확장의 한 길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천황의 말 앞에 쓰러져 죽어야 한다’며 국가주의를 부르짖었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만민 평등을 외치기도 했다. 후쿠자와는 청일전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고 일본이 살기 위해선 조선 정략이 절실하다는 논리를 폈다.
저자는 후쿠자와의 ‘가면’을 벗기는 데서 진정한 일본의 ‘전후’를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현재 일본에서 후쿠자와를 가장 높이 찬양하는 이들은 아베 총리와 전 일본유신회 대표이자 도쿄도지사를 지낸 이시하라 신타로 등 극우 정치인들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아베 총리는 2013년 2월 말 재선 이후 첫 시정연설인 ‘강한 일본을 창조한다’에서 ‘일신독립해야 일국독립하는 것’이라는 후쿠자와의 말을 인용했다. 마루야마는 이 말이 ‘메이지 전기의 건전한 내셔널리즘’을 대표한다고 포장했다.
저자는 “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이 가능한 군대 창설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아베 총리가 전쟁국가를 주도하는 침략주의 사상가였던 후쿠자와를 호명하는 것은 실로 중대한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20세기 일본 학계의 거물을 겨냥한 야스카와 명예교수의 용기와 신념이 그대로 드러난 수작으로 평가된다. 현재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소리없이 야스카와 명예교수를 후원하고 있다.
역자는 후기를 통해 “후쿠자와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화에 관여한 중심 인물”이라면서 “하지만 그의 정치관과 아시아 인식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한국 내 연구는 이상할 정도로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을 연구하는 한국 학자들을 꼬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출판사, 자유집필가 등이 제대로 된 이해없이 후쿠자와를 일본의 근대와 자유민주사상을 전파한 인물로 묘사해 왔다고 지적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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