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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군도 찬 일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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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27 20:55:13 수정 : 2015-07-27 20: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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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의 일이다. 일본 도쿄에 있을 때다. 까만 승합차는 도심 이케부쿠로 거리를 늘 시끄럽게 했다. 차 지붕에 달린 확성기는 “군국 일본”을 외치는 따가운 소리를 쏟아냈다. 쳐다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새겨듣는 사람도 드문 듯했다. 차를 도배질한 욱일승천기, 각반을 차고 일제 군모를 쓴 사람들의 모습은 초라했다.

이런 생각을 했다. “핵폭탄이 도쿄에 떨어졌어도 그런 소리를 할까.”

얼마 뒤 아키히토 일왕이 과거의 역사를 뉘우치는 말을 했다. 1990년 5월 일본에 간 노태우 대통령에게 “통석(痛惜)의 념(念)을 품고 있다”고 했다. 통석, 한자를 그대로 풀면 ‘아프고 안타깝다’는 뜻이다. 아버지 히로히토 왕이 저지른 식민침략과 전쟁 범죄를 아들이 매몰찬 말로 부정할 수 있었을까. 이어 나온 일본 정부의 성명을 듣고서야 그 말이 역사적 사죄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1993년 8월 고노 담화, 1995년 8월 무라야마 담화.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과 식민지배·침략전쟁에 대한 사죄를 담은 일본 정부의 성명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기뻤다. 도쿄 거리를 걸으며 등 뒤에서 들리던 “조센징(조선인)” 소리. 때린 자가 맞은 자를 욕하는 이해하기 힘든 그 소리가 사라질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새 시대를 준비하는 일본 지도자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냈을까. 1990년대 한·일 협력은 그 토대 위에 서 있다. 일본은 교과서에 과거의 잘못을 싣고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정부 차원에서는 그랬다. 외환위기가 아시아를 뒤덮은 1990년대 말에는 “한국은 망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일본도 어려웠다. 서로 돕고 위기가 가라앉은 뒤에는 한·일 통화스와프협정을 맺었다. 협력의 시대다.

지금은 어떤가. 달라졌다. 무라야마·고노 정신이 일본을 지배할 때와는 모든 것이 거꾸로다. 아베 신조 정부가 등장한 2000년대 중반부터 벌어진 변화다. ‘각반을 차고 일제 군모를 쓴 초라한 사람들’이 떠들던 그 소리가 일본열도를 덮고 있다. 아베 총리의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섬뜩한 일이 벌어졌다. “7월9일 이후 재일 한국인은 불법 체류자로 바뀌어 강제송환된다”, “주변에 알고 있는 조선인을 신고해 보상금을 받자”는 유언비어가 일본에 퍼졌다. 아사히신문 21일자 보도 내용이 그렇다. 신고하면 1인당 5만엔의 포상금을 준다는 헛소문에 법무성 입국관리국 홈페이지는 마비됐다고 한다. 입국관리국은 홈페이지에 “특별영주자에게 중요한 알림”이라는 글까지 올렸다. 특별영주자는 재일동포다.

누가 이런 못된 소문을 퍼뜨린 걸까. 머리끝이 송연해진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퍼뜨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 수많은 한국인은 이유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다. 독립신문은 당시 도쿄, 가나가와, 사이타마, 지바에서 참혹하게 학살된 조선인이 6661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희생자 수는 맞기나 한 걸까. 그 조사는 누가 한 것인가. 집단폭력에 희생된 한국인은 더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을 터다. 숨을 죽이며 그 공포를 이겨내야 했던 재일 한국인들. 얼마나 참담했을까.

‘재일동포 추방’ 유언비어는 관동대지진 때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폭력을 만들어내는 사악한 조작이다. 정상인가.

일본 학자 1만명이 집단자위권 법안 처리에 항의하고 나섰다. “아베 정권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일본판 만인소(萬人疏)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전쟁의 참화를 부르는 정치’다. “해외에서 전쟁을 한다”고 했는가. 남을 해치는데 어찌 자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도쿄는 안전하기 힘들다.

일본의 운명은 일본 국민이 선택한다. ‘군도(軍刀) 찬 아베 총리’에게 열광한다면 일본열도의 운명도 초라한 각반을 차고, 초라한 군모를 쓰게 되지 않을까. 일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대한민국, 학살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한 역사를 되풀이할까.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날마다 엉뚱한 일을 벌이니 일본 정치가 이상한 길로 빠지는 걸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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