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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천만원 번다기에"…보이스피싱 가담 30대 회사원 사연

입력 : 2015-07-28 16:57:09 수정 : 2015-07-28 16:5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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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성이 중국까지 가서 보이스피싱 사범으로 전락 정지은(33·가명)씨는 평범한 30대 회사원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빚도 있었지만 동거하는 남자친구와 언젠가는 결혼식을 올릴 꿈을 꾸며 조금씩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살았다.

그러던 정씨는 4월 중순 옛 직장동료 이모(38)씨와 오랜만에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이씨는 자신이 중국에서 일하는데 잠깐 들어왔다며 "집안 사정 여의치 않은 것 다 아는데, 중국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이씨가 하자는 일은 다름 아닌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였다.

정씨는 "나를 바보로 아느냐"며 화를 냈다. "요즘 누가 보이스피싱에 당하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이씨는 "합법적으로 당구장이랑 식당도 하고 있다"면서 "일단 중국에 와서 '양지 일'을 할지 '음지 일'을 할지 결정하라"고 했다.

문득 호기심이 생긴 정씨는 "보이스피싱하면 얼마나 버느냐"고 물었다. "한 달에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1천500만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권비, 비행기 값에 숙식비까지 모두 대준다는 이씨의 말에 결국 정씨는 5월 21일 중국 칭다오(靑島)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씨가 간 '보이스피싱 콜센터'는 방 2개짜리 소형 아파트에 마련돼 있었다. 방에 두 명씩 큰 책상에 마주 보고 앉아서 전화번호부를 펼쳐놓고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그 사무실은 '1차 콜'을 담당하고 있었다. 대출 등을 상담해주는 척하면서 통장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아내 대포통장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이 정보를 넘겨받은 '2차 콜' 조직은 다른 피해자가 그 대포통장에 돈을 넣도록 유도했다.

그곳에 가서 보니 옛 직장동료 이씨는 1차 콜 조직의 팀장이었다.

이씨 말고 두 명의 동료가 더 있었지만 사적인 얘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다.

조직의 최종 목표는 '장 털기'였다. 그곳에서 통장을 '장'으로 불렀는데 '장털었다'는 말은 인출책이 마지막으로 돈을 은행에서 찾는데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캐피탈 김○○대리입니다. △△△고객님 맞으세요? 이번에 저희랑 승인조건이 맞으신데, 대출 필요하시면 상담해 드리겠습니다."

예상대로 80% 이상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 만에 첫 번째 '고객'을 유인했다. 정씨는 왠지 덜컥 겁이 났다.

고객은 중년 가장이었다. 사업에 실패해 이미 파산면책 대출금이 1억원 넘게 있었다.

매뉴얼대로 진행해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받았다. 고객은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대출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정씨는 그 보수로 1천500위안(약 28만원)을 받았다. 감사하다던 고객의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고객 모집'은 쉽지 않았다. 동료가 유인한 고객에 대한 작업을 마무리해서 750위안씩 두 번 더 받았다.

그렇게 3주 동안 일해서 총 3천위안(약 56만원)을 벌었다.

조금은 일에 자신감이 붙어가던 6월 19일, 여느 때처럼 배달음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 일과를 시작하던 참에 갑자기 정전이 돼 전등과 컴퓨터 전원이 모두 꺼졌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동료들과 함께 거실로 나오는데 문이 부서지듯 열리면서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중국 공안이었다.

"한국인입니까?" 조선족 공안이 옌볜 말씨로 물었다.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사흘 뒤 구치소로 이송됐다.

후속 절차에 대해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이대로 중국에 갇힐지 한국으로 보내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밥은 항상 꽃빵과 무말랭이였다. 꽃빵을 입에 우겨넣고는 한 방에 스무 명이 살을 맞대고 잤다. 위생 상태는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달 24일 한국으로 이송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정씨는 그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음날인 25일 정씨는 자신을 중국으로 데려갔던 이씨 등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인계됐다.

27일 구속된 정씨는 "남자친구가 면회오기로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을 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정씨의 손목은 아직 수갑이 낯선 모양인지 붉게 부어 있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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