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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전자책 ‘낯선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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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31 22:21:42 수정 : 2015-08-01 01: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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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도 닿지 않는 종이책과의 간극
‘독서 新문명’ 적응할 시험대 올라
얼마 전 대구에서 강의할 일이 있었다. 강의 시각보다 한 시간 여유를 두고 동대구역에 도착하는 열차를 탔고 가뿐한 마음으로 챙긴 아이패드로 전자책을 읽었다. 얼마를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화면에 빠져들었다. 아뿔싸. 내려야 할 동대구역을 놓치고 말았다. 신경주역까지 가야 했고, 승무원은 ‘오승’으로 간주, 다시 동대구역으로 갈 열차표를 제공해주었지만 강의 시각에 맞추기에는 무리였다. 초조감으로 얼굴이 하얗게 변한 채 신경주역에서 택시를 탔다. 40여 분 후 강의실에 도착하니 10분 지각이었다. 십년감수한 느낌이었다. 그 후 친구에게 이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더니 무슨 책을 하차할 역을 놓치면서까지 재밌게 읽었느냐고 감탄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관심 갖는 형국으로 역을 놓친 실수담에 책 제목을 묻는 상황이라니. 사실 돌아오는 열차에서도 그 전자책을 마저 읽었으나 온전하게 책 내용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분명 흥미롭게 읽었는데도 내 안에 흡수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시인
며칠 전에는 정보기술(IT) 관련 매체에서 ‘종이책과 전자책의 독서력’에 대한 재미있는 연구 사례를 읽었다. 흥미로웠다. 노르웨이 스타방에르대의 안네 망엔(Anne Mangen) 교수는 대학원생 50명을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했다. 똑같은 내용의 추리소설을 절반의 학생에게는 종이책으로, 다른 절반의 학생에게는 킨들 단말기의 전자책으로 읽게 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데 걸린 시간부터 감정적 반응, 내용의 이해도를 측정했다. 학습 능력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집단의 연구였으니 대부분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으니, 그건 종이책을 읽은 학생들의 두드러진 ‘이야기 재구성’이었다고. 망엔 교수는 종이책의 촉감 같은 실제 물리적인 차이가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종이책을 읽을 때는 전체 분량 중 어느 부분을 지나고 있는지 맥락을 파악하면서 독서하게 된다. 반면 킨들로 전자책을 읽을 때는 부피감이나 촉감이 없기에 이 사실을 인지하지 않고 현재 읽는 페이지에 집중하게 된다.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장 넘길 때의 촉감이 독서력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감각과 느낌이 책을 다 읽은 뒤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데 부분의 기억과 연동돼 도움을 주었을 것이고 전자책은 그런 연결 고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였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사무실에서든 집에서든 인터넷과 스마트폰 화면에서 많은 것을 읽어대고 있다. 중독에 가까운 읽기로 정보 소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맥락을 갖고 편집되지 않은 정보는 바로 사라져간다. 독서 호흡이 변한 것을 집중하기 어려운 산만한 환경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망겐 교수의 연구 결과로 전자책 독서에는 어떤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뒤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면 단편적인 기억만 남게 된다. 단말기에 보이는 페이지에는 분명 몰입한 듯 보여도 전체 내용과의 연계를 떠올리지 못하면 체제를 갖춘 한 권의 전자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종이책에 익숙하다. 전자책 읽기가 낯설고 힘들다. 그러나 먼 길 떠날 때 종이책보다 날렵한 단말기에 많은 양을 탑재할 수 있는 전자책은 매혹적이다. 세련된 편집 방식으로 매체의 장점을 살려낸 전자책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출판계에서는 여전히 전자책으로 만들고 읽기 좋은 성격의 책 장르는 정보가 분절된 실용서, 연구에 필요한 자료 성격의 학술서, 그리고 감상만으로도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정교한 읽기가 필요한 문학 작품, 인문서 전자책도 많아질 것이다. 전자책 독서력,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읽기 능력의 새로운 시험의 시대가 도래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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