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체육문화센터 실내체육관.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 검은색 연습용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빠른 속도로 코트를 휘저으며 뛰기 시작한다. 헉헉거리는 선수들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파이팅” 소리는 더욱 커진다. 중간중간 주어지는 휴식시간에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독려한다. 이들의 목표는 하나다. ‘꼴찌 탈출.’
지난 21일 경기 남양주시 체육문화센터 체육관에서 구리 KDB생명 여자농구단 선수들이 팔짱을 낀 김영주 감독(가운데) 뒤에서 슛을 날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양주=이제원 기자 |
6개 팀이 속한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무대에서 지난 세 시즌 동안 KDB생명의 순위는 6위-5위-6위다. 매번 하위권에서 맴돌자 구단은 지난 시즌이 끝나자 마자 칼을 빼들었다. 과거 KDB생명의 영광을 이끌었던 김영주(47) 감독을 다시 선임한 것. 구단이 김 감독을 다시 불러오기는 쉽지 않았다. 2011∼2012시즌 준우승을 안긴 그지만 지도 스타일때문에 일부 선수들과 불화를 겪은 끝에 팀과 이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단의 부름에 그는 3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KDB생명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자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등 그는 여자농구계에서 꾸준히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결국 그는 지난 10일 막을 내린 ‘박신자 컵 서머리그’에서 4전 전승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화려한 복귀 신고를 했다.
김 감독은 어린 선수들의 성장세로 내심 좋은 성적은 기대했지만 우승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WKBL 서머리그는 각 팀에서 만 30세 이상 선수 3명은 제외된다. 정규리그에서 선배들에게 밀려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젊은 선수들을 위한 무대다. 덕분에 잠재력이 컸던 선수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맹활약했다.
지난 3월 팀에 복귀한 김 감독은 선수들의 자신감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가 돌아와서 마주한 KDB생명 선수들은 계속 하위권에 맴돌며 지는 데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김 감독은 지난 5월, 다른 팀보다는 조금 일찍 전지훈련 길에 나섰다. 경북 상주에서 기초 전술훈련과 산악구보를 매일 진행하면서 단기간에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리고 정신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패배의식에 휩싸인 선수들에게 의도적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면서 “체력훈련을 강조하지 않는 지도자는 없겠지만 조금 더 세게 하면서 집중력을 높이려고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우승을 계기로 선수단 분위기도 한층 밝아졌다. 지난 두 달여 땀 흘린 고생을 보답 받았기 때문이다. 박신자컵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최원선은 “3년 연속 리그 성적이 바닥이었는데 이번 서머리그에서 우승하면서 팀 분위기가 매우 밝아졌다”며 “이번에는 1차 전지훈련부터 힘들었는데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고 환하게 웃었다.
KDB생명은 다음 시즌 WKBL 정규 시즌 타이틀 스폰서를 맡는다. 각 구단이 매년 돌아가면서 맡기 때문에 성적이 나빠도 스폰서가 돼야 한다. 선수들의 기량이 오르고 외국 선수까지 잘 뽑아 우승 욕심을 드러낼 법도 하지만 김 감독은 멀리 내다봤다. 그는 “타이틀 스폰서를 맡은 해에 우승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너무 집착하면 무리수가 따르기 마련”이라면서 “천천히 한걸음씩 떼면서 3년 뒤에는 대권을 노려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남양주=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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