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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복면가왕’에 빠졌다. MBC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인데 가수, 연기자, 개그맨 등 방송·음악인들이 신원이 노출되지 않는 복면을 쓰고 노래 대결을 벌인다. 평소에 몰랐던 출연자들의 진짜 가창력을 편견 없이 확인할 수 있다는 매력에 지난 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선을 보였을 때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만 들으니 누구인지 맞히는 게 쉽지 않다. ‘누구 같은데…’ 생각했다가 틀리기도 하고 가늠도 못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가요 담당 기자로서 음악을 더 부지런히 들어야겠다는 다짐이 늘어간다.

복면가왕에서 화제를 모으는 출연자는 세 부류로 나뉜다. 원래도 가창력으로 유명하지만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가수, 외모나 춤으로 유명해 그간 노래 실력은 주목받지 못했던 아이돌 가수, 마지막으로 그간 몰랐던 노래 실력을 뽐낸 연기자나 개그맨이다. 두 달 동안 가왕의 자리를 지킨 김연우를 제외하고, 가수인 출연자들은 “역시 잘한다”는 평에 그칠 뿐 감동을 주기는 힘들다. 대신 젊은 시절 강변가요제로 데뷔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가수가 될 수 없었던 연기자 문희경, 개그맨으로 유명한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몇 차례 정규음반을 냈던 김태균, 아이돌이라는 편견을 깬 에프엑스의 루나 등의 도전은 시청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줬다.

김희원 문화부 기자
비록 1라운드에서 탈락하더라도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감격에 벅찬 표정이다. “복면 뒤에서 남들이 평소 아는 내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을 표출해보고 싶었고 그를 이뤘으니 후련하다”는 것이다.

그런 얼굴들을 보면 부럽다. ‘내게도 누가 복면을 씌워준다면 평소 꿈도 못 꿀 일을 맘껏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누구나 평소의 나, 정확히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의 일탈을 꿈꾼다. 특히 사회적 역할과 위치에 따라 특정 모습을 강요당하는 분위기인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이면의 욕망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고 진짜 복면을 쓰고 돌아다닐 수는 없다. 다만 일상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복면과 같은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은 가능하다. 조용한 이미지와 다르게 격렬한 운동을 즐기거나, 록페스티벌에 가서 몸살이 날 때까지 헤드뱅잉을 하거나, 가끔씩 파격적인 패션과 메이크업으로 변신하는 것 등 남들이 평소 상상하지 못하는 의외의 모습은 모두 복면이 될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은 누군가의 복면은 범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교사와 여학생을 성추행한 고교 교장과 남교사들, 음란행위로 논란을 빚은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잡고 보니 대기업 사원·평범한 주부였던 악플러들. 억압된 욕망이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돼 남들에게 해를 끼치게 된 경우다. 이들에게도 괜찮은 출구가 하나쯤 있었다면 어땠을까. 요즘 ‘알 만한 사람들’의 범죄가 사회 뉴스를 장식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김희원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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