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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외교안보의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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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13 20:21:54 수정 : 2015-08-13 21: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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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전과 판이한 대응… 북에 핵고도화 시간 줘
김관진 실장 책임 커… 외교도 중·일에 속수무책
외교안보팀 수술해야
1976년 8월18일 판문점 미루나무 도끼만행 사건이 벌어지자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즉각 움직였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며 “군화와 철모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미친개, 몽둥이, 군화, 철모 같은 단어는 군 장병의 굳은 결의로 이어졌고 도발자를 응징하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한국군은 미군 몰래 특수부대를 동원해 북한군 초소 네 곳을 박살냈다. 한국군은 북한군에 맞상대가 안 되던 시절이었다. 도발하고도 시치미를 떼는 것밖에 하지 않던 김일성이 그때 처음으로 사과를 했다. 대통령과 한국군의 단호한 태도에 움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39년이 지난 2015년 8월4일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이 일어났다. 딸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와 많이 다르다. “휴전선은요?”라고 참모들에게 묻지도 않았고,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전화도 걸지 않았으며, 꽃다운 나이에 다리를 잃고 절망할 두 명의 하사 손도 잡아주지 않았다. 대신 도발 다음 날 다른 지역 휴전선 근방에 가서 “남북이 협력하면 DMZ가 ‘꿈이 이뤄지는 지대(Dream Making Zone)’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1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직접 말하지 않고 도발 일주일 후인 11일에야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표명했다. 군 통수권자인 박 대통령이 엇박자를 내고 너무 느리게 대응하는 이유가 의도적인지, 둔감해서인지는 드러난 게 없다.

백영철 논설위원
결과는 어처구니없다. 박 대통령이 DMZ의 새로운 낱말풀이를 한 그날 저녁, 최윤희 합참의장은 폭탄주 술판을 벌였다. 군은 도발 나흘 후인 8일에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여는 등 뒷북 대응했다. 엿새 후에야 엠바고(보도자제 요청)를 풀면서 군수뇌부는 피해 하사관들의 영웅담 뒤로 숨어버렸다. 입이 닳도록 말한 원점타격 카드는 꺼내지도 않았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북에 밀리던 39년 전과 딴판이다. 위아래의 혼연일체는커녕 저마다 제 팔만 흔드는 모습이다.

한국은 인구 5000만명이 넘는 나라 가운데 1인당 소득 기준으로 세계 7위 부자다. 적의 도발에도 대통령의 메시지가 불명확하고 군수뇌부가 우왕좌왕하는 것은 지킬 재산이 많아져서인가. 나라의 경계선이 뚫리고 장병들이 희생당했는데도 이렇게 미적지근해서야 나라를 제대로 지켜낼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김정은은 무슨 생각을 할까. 북핵을 고도화하는 데 이제 누가 방해하겠느냐며 더욱 기고만장할 것이다. 국가안보를 두고 좌고우면하는 느슨한 대응, 군통수권자에게 정확한 상황인식을 심어주지 못한 책임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져야 한다.

외교안보의 딜레마는 이뿐 아니다. 한국의 외교안보는 사면초가 형세다. 박 대통령은 중국전승절 행사 참석을 두고 장고 중이다. 이젠 가든 안 가든 미국과 중국 어느 한 나라에게서 눈총을 받을 처지가 됐다. 전승절 행사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점은 중국의 외교 주도권 장악 노력이다. 중국은 일본의 항복일인 9월3일을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해부터 기념하고 있다. 올해는 군사 퍼레이드까지 펼치고 세계 50여국 정상에게 초청장을 발송했다. 중국은 박 대통령이 고민하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부를 것이다. 박 대통령이 톈안먼에 오르면 대박이고, 안 가도 큰 부담을 주고 있으니 남는 장사다. 중국 외교는 꿩 먹고 알 먹고 국물까지 먹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늘 전후 70년 담화문을 발표한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그제 “아베 담화가 향후 한·일 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아베 담화를 보고 광복 70주년 담화의 수위를 결정한다고 한다. 한국 외교가 아베 총리의 입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한국의 외교를 쥐락펴락하는 흐름이다.

동북아 안보지형이 많이 불안정하다.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외교, 물러터진 안보태세로는 격랑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 아무리 천재라도 그렇다. 임기가 2년 반이 남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선 결국 참모들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사면초가의 궁지를 돌파하려면 외교안보 전략은 창의적이고 행동은 주도적이어야 한다. 외교안보팀의 전면수술 외 대안이 없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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