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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아리랑의 힘, 한민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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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17 21:18:00 수정 : 2015-08-17 2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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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격찬한 가장 모성적인 노래
지구촌 수평시대 한민족 웅비의 혼
광복 70주년의 열기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면서 통일에의 꿈을 영글게 하고 있다. 한민족 힘의 깊은 연원은 무엇일까 생각하면, 역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힘에 있는 것 같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민족, 그 노래 중 가장 어머니와 같은 노래가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참으로 미묘한 노래이다. 들을 때마다 그 의미가 다르고, 기분이 다르고, 어느 때 불러도 한국인으로 하여금 진정 한국인이게 하는 노래, 아리랑은 노래 이전의 노래요, 노래 이후의 노래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객원논설위원
아리랑은 세계적인 작곡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하기도 했다(2003년). 아리랑은 가장 배우기 쉽고, 가장 모성적인 노래라는 격찬을 받았다.

음악의 성공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로 분석할 결과, 미국인의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10점 만점에 7점, 한국의 ‘오케스트라 버전 아리랑’이 8.9점으로 나왔다고 한다.

아리랑에는 무슨 힘이 있길래 그토록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것일까. 아리랑은 ‘승리의 노래’도 아니고 ‘투우사의 노래’도 아니고, ‘축배의 노래’도 아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 나오는 ‘환희의 노래’도 아니다. 그런데 아리랑은 세계 최고의 민요이다. 아마도 아리랑은 사람이 만든 노래가 아니고, 신이 만든 노래이거나 자연이 만든 노래일 것이다.

일제 식민 기간을 거치면서 아리랑은 흔히 ‘한의 노래’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아리랑은 ‘한’의 심정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어디선가 그 한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 솟는다. 아리랑은 신바람마저 솟게 한다.

아리랑의 모습은 천태만상이어서 어떤 상태에서 노래하더라도 거기에 맞게 스스로 만들어지는 노래이다. 아리랑은 편곡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노래로 재탄생하는 노래이다. 한국에는 수백 개의 아리랑 버전이 있고, 가장 최근에는 월드컵 이후 ‘상암 아리랑’도 나왔다. 말하자면 ‘아리랑’ 앞에 장소나 의미를 붙이면 아리랑 변종이 나온다. 아마도 아리랑 변종은 한국 사람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아리랑에는 기쁨과 슬픔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한국인이 수많은 외침 속에서도, 최근세사의 일제의 혹독한 식민통치 속에서도 살아남아서 나라를 보존하고, 오늘날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하게 한 것은 아리랑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떤 ‘힘든 고개’라도 넘어서는 ‘힘찬 노래’가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일제 때 연해주와 만주 일대로 흩어졌던 카레이스키와 조선족이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불렀고, 현재 170개 나라에 흩어져 사는 우리 교민들이 고국과 가족을 생각하며 부르고 있고,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민족이 하나가 될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구동성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아마도 아리랑의 비밀과 힘을 안다면 남북통일은 물론이고,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비결이 될 것 같다. 아리랑은 미국 장로교 찬송가에 올라 있고, 일본 국회의원 후보자가 선거유세에서 열창을 하는가 하면, 일본의 한 여고생이 아리랑에 심취해 유학을 온 사례도 있다.

아리랑은 성악, 기악, 오케스트라를 막론하고 이 시각에도 수없이 많은 변주곡이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고 불리고 있다. 6·25전쟁 때 한국을 도우러 왔던 외국 병사들에 의해,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 동포들에 의해 전파되어 세계 브랜드가 된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외국의 문화학자와 음악가들은 한국의 아리랑을 듣고 놀란다고 한다. 첫째는 아름다운 선율에 놀라고, 둘째는 무수히 많은 아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란다고 한다. 아리랑은 단조로우면서도 반복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부르기 쉽고 아름다운 선율 때문에 그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한다. 아리랑은 한국에선 돌멩이만큼 흔하지만 세계적 아티스트들은 아리랑의 가치를 인정한다.

노르웨이 출신 음악가 잉에르 마리는 아리랑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열린 구조로 되어 있고 자장가처럼 편안하다고 했다. 아리랑의 ‘열린 구조’, ‘자장가처럼 편안하다’는 데에 주목해보자. 또 ‘모성적인 노래’라는 점을 상기해 보자. 여기에 ‘인류의 평화’ ‘평화적 인류’의 메시지와 해답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문명은 가부장-국가사회의 성립 이후 수천년 동안 남성적 지배-억압의 닫힌 구조, 위계의 구조 속에서 영위되어 왔다. 노래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지배위계의 구조, 수직적 구조 속에 적응해왔고, 그러한 작곡(텍스트)을 구성해왔다.

그런데 인터넷에 의해 지구촌이 하나가 되면서 이제 국가보다는 공동체의 횡적 연대가 더욱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는 수직적으로 세워진 닫힌 구조보다는 수평적으로 연결되는 열린 구조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수평의 시대에 한국문화가 다시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계기를 맞은 것은 한국문화의 모성적 특성이 다시 각광을 받게 되었음을 뜻한다. 아리랑은 오늘날 한민족 웅비의 리듬이며, 한국문화의 힘인 것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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