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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의법률산책] 부동산실명법 해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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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18 21:44:43 수정 : 2015-08-18 21: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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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신탁은 주로 예금과 부동산에서 문제 된다. 둘 다 문민정부 시절 실명제가 도입됐고, 부동산실명제는 올해로 20년이 됐다. 원래 부동산 명의신탁은 일제 강점기에 종중 부동산을 등기하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종중 명의로 등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종중은 부동산을 지키기 위해 종중 대표자 등의 명의로 등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식민지의 최고법원인 조선고등법원은 신탁자인 종중과 수탁자인 종중대표 등과의 사이에서는 신탁자가 소유자이고 종중대표로부터 부동산을 취득한 제3자와의 사이에서는 수탁자가 소유자라는 법리를 고안해 냈다. 이 명의신탁 법리는 현재도 종중 간, 부부 간 그리고 종교단체 조직 간 명의신탁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소유자가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론은 근대의 혼일적인 소유권 개념에 반한다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대법원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그런데 이처럼 일제강점기의 아픈 기억을 가진 부동산 명의신탁이 종중 이외의 일반인 사이에서도 투기나 탈세를 위해 널리 이용돼 폐해가 심해지자, 그 사법상 효력을 규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현행 부동산실명법에 따르면 명의신탁약정은 무효이고, 명의신탁약정에 기초한 물권변동도 무효다. 그러나 수탁자가 신탁자로부터 부동산 매수자금을 받아 직접 부동산소유자와 계약을 해 부동산을 취득한 경우(등기뿐만 아니라 부동산취득계약의 당사자 명의도 신탁한다는 뜻에서 계약명의신탁이라 함)에는 예외적으로 매각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 물권변동을 유효로 해 수탁자가 소유권을 취득하도록 한다. 따라서 신탁자는 수탁자에게 부동산이 아니라 부동산 매수자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수탁자가 자진해서 부동산을 반환하면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면 신탁자와 수탁자가 매수자금 반환에 갈음해 명의신탁된 부동산 자체를 양도하기로 합의한 경우는 어떻게 될까. 대법원은 이런 대물급부의 약정이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을 명의신탁자를 위해 사후에 보완하는 방책에 불과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효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건에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또 부동산실명법은 그 시행일 이전의 명의신탁에 대해서는 실명전환의 유예기간을 1년 두었고, 그 후에도 실명 전환을 안 한 경우에는 그 효력을 법 시행 후의 명의신탁과 마찬가지로 처리하도록 했다. 따라서 법에 따르면 실명전환의 유예기간이 지난 계약명의신탁의 신탁자는 수탁자를 상대로 매수자금만을 반환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부동산의 반환청구를 허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신탁자를 우대하고 있다. 이는 법에 반하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법에 반하는 해석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불가피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대법원 판결에서는 그것을 읽을 수 없다는 뜻이다. 유예기간이 지나기 전에는 과거 판례에 따라 신탁자가 수탁자에게 부동산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었고, 부동산실명법의 취지가 소유권의 신탁자 귀속을 막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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