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질이라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무의미의 층위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애당초 어떠한 무엇도 담지 아니하고 평면 자체로의 그 실체만 나타내고자 했지요. 어느 순간 사유의 지평(평면)이 열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몇년 전 문득 ‘산책’이라는 말의 그 담담한 반복-회귀의 의미에 주목한 바 있다. 반복되는 일상사나 비망록의 온갖 약속, 예기치 않았던 사건들은 실상 온통 점과 점 그 자체로 인식될 뿐 아니라 그 점과 점의 간극 또한 설명키 어려운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저는 그 간극을 ‘모호함이 가득 찬’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실은 그 모호함이야말로 바로 쉼 없는 호흡과 육신의 움직임으로 충일된, 그 어떤 사물, 상념에도 묶이지 않는 바로 제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요.”
그는 자신으로의 회귀를 가능케 하는 산책의 의미야말로 그의 작업의 기본적인 정신과 같은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1970년대 중후반 이래 ‘평면조건’ 명제의 그의 작업은 한마디로 단조로움과 무미함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변조의 드라마나 특기할 제스처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중심을 허용치 않는 균질한 화면을 통해 평면 그 자체를 더듬어 확인하려는 것이 저의 회화관이라 할 수 있지요.”
그에게 백색 혹은 흑색조의 색조는 색채 성격보다는 하나의 질료다. 그저 화폭에 그 질료를 쌓아갈 뿐이다.
“무의미한 층위의 지평에서 저는 저의 일상, 정신구역을 통과한 하나의 세계로서의 평면구조와 마주하게 됩니다. 화면의 물질적 시각적 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내달 20일까지 더페이지갤러리 초대전. (02)3447-0049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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