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김 전 처장은 독립투쟁을 한 김구 선생의 손자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순국선열을 기리고 국가유공자를 돌보는 국가조직의 수장이었다. 그런 그가 한사코 부정한 방법으로 구제를 받으려 했으니 독립투쟁을 한 할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했다.
전관 변호사에게 이토록 매달리는 것을 보면 ‘전관 효과’가 큰 모양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두드러질수록 사법 불신은 깊어진다. 서울중앙지법이 광장에 압력을 행사한 것을 두고 “법원이 부당한 간섭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전관예우의 부조리를 예방하기 위해 재판부만 바꾸는 소극적인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면 그런 종류의 간섭은 오히려 박수받을 일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의 노력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전관 배제 원칙은 ‘재판부 재배당 활성화 대책’이란 내부 방침에 따른 것일 뿐이다. 법과 제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상위 법원에서 전관예우를 허용하면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법원이 짬짜미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면 전관예우 부조리를 항구적으로 일소할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학연, 지연, 근무 연고가 있는 특수관계인이 변호인으로 선임될 경우 담당판사가 의무적으로 신고해 전관예우를 원천 차단하는 상피제도(相避制度)를 도입해야 한다.
법관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재판부가 변호인과의 연고 관계를 들어 재배당을 자진 요청한 사례는 이달 들어서만 6건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한 건도 없었다. 서울중앙지법의 조치가 법원 개혁의 싹을 틔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대법원이 전관예우의 폐습을 없애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판사들의 양심에만 맡겨 두기에는 전관예우의 뿌리가 너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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