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동명이인 조덕현, 캔버스에 영화같은 이야기를 담다

입력 : 2015-09-02 00:52:54 수정 : 2015-09-01 11:58:0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사진 그림 그리는 조덕현 작가 개인전 빛바랜 사진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조덕현(58·이화여대 교수) 작가가 이번엔 가상의 독거노인을 소재로 작업을 했다. 빛바랜 사진 콘셉트는 변함이 없다.

“냉전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저 같은 베이비붐 세대는 지나간 일이나 과거 역사를 돌아보는 것에 일정한 포멧 같은 것이 있었어요. 어떤 틀을 가지고 보는 것이 체화됐지요. 어느 날 갑자기 냉전체제가 와해되면서 비로서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구나 생각하게 됐지요. 이 무렵 옛날 사진을 보게 됬는데 단순한 팩트가 깨지면서 사람이 보이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진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그에겐 부여된 교육은 세계가 어떤 프레임 속에 있고 그것을 절대적이게 했다는 얘기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비로소 미시적인 삶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사진 그림에 집착하는 이유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사진을 통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지요. 사진이 굉장히 소중한 매체라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회상하고 제 기억에 살을 붙이는 습관이 성장과정에서 있었던 것 같아요.”

‘헐리웃에픽-그레타 가르보’(캔버스, 한지에 연필). 1930년대 유명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와 가상의 열연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그가 굳이 빛바랜 옛 사진을 그리는 이유는 뭘까.

“어떨 때는 19세기나 20세기 초반, 어떨 때는 15세기 이미지를 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시기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뭔가 현재를 기준으로 멀리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애착이 있고요,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회상의 역동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그가 옛 사진을 그대로 그리는 것은 아니다. 초기엔 현재 인물을 과거 인물에 대입하는 평면적 합성을 했다면, 최근엔 영화를 찍듯이 연기 요소를 강화한 사진을 만들고 그린다. 10월25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에선 근현대사를 살아온 가상의 독거노인을 연출한 사진 그림과 영상작품도 보여준다.

“시니어 세대들의 소외와 비애감 속에는 노여움이 깊숙히 박혀 있지요. 특히 독거노인들은 마지막 기억이라 할 수 있는 옛날을 계속 회상하면서 살게되지요. 기억이 변질돼 망상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를 견뎌내기 위해 기억은 변질되고 왜곡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영화배우 조덕현(오른쪽)과 자리를 함께 한 조덕현 작가. 그는 영화와 문학적 서사구조를 작품에 적극 불러들여 삶의 통찰을 넓혀가고 있다.
그는 기억은 삶의 본질이라고 했다. 일민미술관 전시를 위해 그는 동명이인 배우 조덕현(48)을 독거노인 역에 발탁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 ‘7번방의 선물’ 등에 열연한 배우다.어느 날 부터 인터넷 검색 순위에서 그를 치고 올라온 배우 조덕현이란 이름을 발견하고 만남을 가지면서 일이 성사됐다. 단칸방에서 병마에 시달리며 뒤척거리는 모습의 영상도 찍었다. 독거노인이 주거 공간도 재현했다.

가상의 독거노인은 영화판을 전전하다 빈털털이가 된 인물이다. 자신이 유명 배우와 영화에 출연 한 망상에 빠지기도 하고 떠난 연인이 유명 배우였다는 환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배우 조덕현은 옛 영화스틸사진을 보고 가상의 표정연기를 해야 했다. 대본과 콘티를 바탕으로 연기하는 배우로서는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스틸장면을 상상해 가며 작업을 했다. 유명 영화 스틸사진 속 주요인물 하나가 배우 조덕현의 얼굴로 대치되는 형식이다.

“독거노인의 화려했던 기억과 망상, 그리고 스러져가는 현실이 극한 대비를 이루지요. 삶의 콘트라스트를 극대화 하는 겁니다. 누구나 젊은시절 전성기는 있잖아요. 그것과 말년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면서 삶을다양하게 해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폐병걸린 독거 노인의 기침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화려한 할이우드 영화속 주인공이 된 독고노인의 가상의 스틸사진이 중첩된다.

“삶은 서사이자 서정이기도 합니다.”

윤이상의 음악이 흐르며 정원의 풀들이 음표처럼 나부끼는 설치작품도 눈길을 끈다 커튼속에서 풀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방식이다. 언듯보면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커튼 아래엔 미니 인간군상들이 놓여져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창으로 윤이상 음악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양적 감성에 충실했던 그의 음악을 이제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인간사 서사적인 구조의 틀보다도 서정의 여백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게 됩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