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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추문·정체성 논란까지' 기무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입력 : 2015-09-02 17:20:42 수정 : 2015-09-02 17: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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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령부.

소속 부대원들의 정보 유출과 전직 요원들의 불법적 무기 수출 등 잇따른 추문에 시달리고 있는 국군기무사령부가 대대적인 혁신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기무사는 2일 서울 용산의 국방컨벤션에서 ‘기무사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군 관계자와 안보전문가 등 150여명이 참석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안보환경 변화에 따른 기무사의 임무 혁신과 신뢰회복 방안 등이 논의됐다.

하지만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래 ‘군사 쿠데타 방지’라는 핵심 임무를 잃어버린 기무사에 새로운 정체성을 심고, 군 정보와 수사기관에 대한 업무영역 재설정 등 개혁조치가 뒤따르지 않는 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전문가들 “전문성 확충·신뢰 증진 우선”

이날 오후에 열린 혁신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은 기무사의 전문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1부 주제발표에서 한희원 동국대학교 교수는 기무사의 과학기술정보 수집을 통한 정보분석 역량과 방첩활동 강화 등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정보 역량을 재구축하고 첩보통합처를 신설하며, 정보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홍보실을 창설해 개방화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고 한 교수는 주장했다.

김철우 한국국방연구원 위원은 기무사의 신뢰 증진을 위한  ▲전문성 ▲직무윤리 ▲특화역량 ▲공감획득 ▲준법의식 ▲소통확대 ▲보안지원 등으로 구성된 7대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김 위원은 7대 원칙 수행 방안으로 방첩활동과 공보기능을 강화하고 군 보안감사에서 권위주의를 탈피하며, 기무사령관의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법적 근거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부 종합토론에선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의 사회로 최병묵 월간조선 편집장, 하정열 안보통일연구원장,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김종대 군사전문가 등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참석자들은 ▲기무사 정체성 재정립과 관련 법령 정비 ▲비리 부대원에 대한 강도 높은 인사 조치 ▲인재 유치차원의 기무사만의 인센티브 적용 ▲기무활동의 정당한 사회적 평가를 위한 노력 ▲혁신에 대한 강한 실천 의지 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기무사 관계자는 “이번 세미나가 기무사 혁신에 대한 부대 외부의 다양한 시각과 애정 어린 질타를 듣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소통의 장이었다”며 “세미나 결과는 혁신 과제로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무사는 올해 연말까지 새로운 혁신안을 제시해 실행에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 “문제는 그게 아니야. 존재 의미야”

기무사가 고강도의 혁신안을 준비하면서 일부 보직을 개방형으로 전환해 전투병과도 기무 요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여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다.

기무사는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창설된 조선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가 시초다. 특별조사대, 육군본부 특무대로 개편됐고 6.25를 계기로 조직이 급성장했다. 1977년 육해공군 보안부대를 통합해 출범한 보안사는 12.12 쿠데타에서 신군부 권력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무소불위 권력기관이 됐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불법 사찰 폭로 직후 국군기무사령부로 바뀌었다.

군사정권 당시 보안사(현 기무사)는 ‘눈과 귀’로서 쿠데타 방지와 사찰, 방첩 등의 임무에 치중했다. 북한이 남파한 간첩들을 체포해 안보 강화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비군사적 임무도 적지 않게 수행하면서 중앙정보부와 더불어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군사정권은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를 의도적으로 경쟁시켜 국내 정보를 확보하고 정치 공작을 진행했다.

미군의 정보수집용 안테나(자료사진)


하지만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안보환경이 변화하면서 기무사의 존재 의미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군에 대한 문민우위가 정착되면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고, 민간 분야에 대한 개입도 불가능해졌다. IT의 발달로 간첩이나 무장공비를 침투시켜야 확보할 수 있었던 정보들도 인터넷 해킹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예전에 비교하면 해야 할 일들이 줄어들었지만 조직 규모는 군사정권 시절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요원 수도 4000여명에 달한다.

군 간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를 틀어쥐고 있다는 것은 역대 정권의 국방개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이 됐다.

1993년 하나회를 척결한 김영삼 정부는 기무사 개혁에 착수해 장군 수를 감축했지만, 1년 만에 예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기무사를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로 통폐합하는 국방개혁안을 마련했지만 무산됐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무사가 예하에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하려다 기무사 확대에 대한 역풍으로 국방부 소속 부대로 창설되기도 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기무사가 존재 의미를 잃고 외연 확장에 골몰하는 동안 소속 부대원들은 일탈을 거듭하고, 본연의 가치도 사라지는 느낌”이라며 “조직 보호가 존재 의미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 겹치고 또 겹치는 군 정보기관 업무, 정리할 때 됐다

이러한 문제는 기무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군 내에 존재하는 정보, 수사기관 전체의 문제다.

현재 군에는 국방정보본부와 사이버사령부, 각급 부대의 정보병과, 기무사령부가 정보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보본부 산하에는 인간정보(HUMINT) 등을 담당하는 정보사령부와 신호정보(SIGINT)를 수집하는 777사령부, 지리정보를 주관하는 국방지형정보단 등이 있다.

미군의 위성 정보 수집 시설(자료사진)


이 중에서 군사정보의 수집과 분석, 방위산업 보안정책, 군사기술정보 등 국방정보본부의 업무 중 상당수가 기무사령부와 겹친다.

그나마 분리되어 있는 부분이 군 내 방첩, 대테러 업무다. 하지만 기무사가 방첩 업무에만 전념한다면 4000여명에 달하는 인원과 조직 규모를 유지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미군처럼 전 세계에 원정군을 보내는 나라를 제외하면 군 방첩 임무를 위해 방대한 규모의 조직을 운영하지 않는다. 군 내부 동향 파악 역시 헌병이나 감찰 등 유사 조직들이 있다. 때문에 기무사의 혁신을 계기로 군 정보기관의 업무를 조정하면서 정보수집의 효율화를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기무(機務)’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밀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 중요한 일이 군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활동인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탈일지, 조직보호를 위한 방패막이 될지는 앞으로 기무사가 펼칠 혁신에 달려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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