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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동아시아 미래를 내다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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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9-02 21:10:47 수정 : 2015-09-02 17: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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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열병식 참관을 동아시아 질서 다시 볼 기회 삼아
창의적 외교로 새 길 열어나가야
“통주에서 연경까지 40리 사이는 돌을 깎아서 길에 깔았다. 쇠 수레바퀴가 서로 맞닿는 소리가 더욱 커서 정신이 아찔하게 한다.” 1780년 청나라 건륭제 70세 생일 축하사절 수행원으로 베이징에 간 연암 박지원이 황성에 이르는 길에서 느낀 위압감을 ‘열하일기’에 실감나게 기록했다. 그가 2000리 길을 가서 본 황성은 “그 성 둘레는 40리, 왼쪽에 창해(滄海)가 둘리고, 오른편에는 태항산을 끼고, 북으로 거용관을 베고, 남으로는 하수(河水), 제수(濟水)가 옷깃처럼 되어 있다”고 했다. 황성의 웅장함이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연암은 이 책에서 당시 동아시아 질서의 작동 방식을 밝히고 조선의 생존 전략을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이 최고 예우를 약속하고 ‘모셔가’ 바로 정상회담을 열었다. 내친김에 오늘 연암의 길을 따라 청나라 황궁 남문인 톈안먼에 가서 항일전쟁 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참관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곳에서 중국의 꿈을 세상에 알린다. 우리에겐 동아시아를 다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학계에선 동아시아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한다. 역사학자 백영서에 따르면 “이 지역을 구성하는 주체의 행위에 따라 유동하는 역사적 구성물”이며 “지역을 호명하는 주체가 수행하는 과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실천과제(또는 프로젝트)로서의 동아시아’”다.

박완규 논설위원
이처럼 복합적인 시공간인 동아시아의 미래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동아시아 질서의 구조적 불안정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 패권이 쇠퇴하고 중국이 부상한 데다 일본이 국가주의 정책을 내세우면서 지역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 경제의 급속한 둔화는 동아시아 각국에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남북한은 언제든 군사적 대치상태로 번질 수 있음을 확인한 뒤 갈등을 봉합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의 외교 입지를 넓혀준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반도는 동아시아 질서가 재편될 때마다 화를 입었다. 전란에 휩싸였으며 한때 식민지로 전락했고 분단상태에 갇혔다. 동아시아 질서 변동을 감지하고 치밀하게 대응하는 역량이 부족한 탓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비관주의를 극복하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외교 역량을 발휘할 때다. 미국이나 중국에 치우치지 않고 두 나라를 적절히 활용할 공간을 확보하면서 갈등을 능동적으로 풀어나갈 외교력을 키워야 한다. 동아시아 새 질서 형성 과정에서는 제국을 꾸린 경험이 없고 민주주의와 시민사회가 발전한 우리나라 같은 중견국가가 갈등 중재자나 협력 촉진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동아시아는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탈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외교 과업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동아시아 협력 강화다. 북한 문제를 배제한 동아시아 담론은 한가운데에 구멍이 난 도넛이라고 할 정도로 둘은 맞물려 있다. 우리나라는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미국, 중국 등 외국에 의존하게 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자립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은 8·25 남북 합의를 발판 삼아 독자 외교의 공간을 넓힐 수 있다. 나아가 남북관계와 한·중관계의 진전은 일본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미 동맹관계와 한·중 협력관계를 조화시키면서 미·중 간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동아시아에서 우리의 소임을 다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단초를 제시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열병식 때 각국 정상들과 함께 톈안먼 성루에 오른다.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한 상징적인 자리다. 동아시아 질서를 명료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중국군 최신예 무기를 내려다볼 게 아니라 동아시아의 과거를 돌아보고 그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동아시아의 미래를 여는 것은 치열한 외교 노력을 수반하는 고된 여정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면 피할 도리가 없다. 창의적이고 과감한 외교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고도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이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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