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39)의 네 번째 장편 ‘여름을 지나가다’(문예중앙)는 서사시 같다. 시종 잔잔한 톤으로 전개하지만 흐린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풍경처럼 흐릿하다. 이른바 ‘오포세대’란 아무리 노력해도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 마련 등 5개의 미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신조어인데 이즈음 젊은 세대의 고난을 사뭇 과장한 혐의가 짙다. 그렇지만 아직 인생을 제대로 발굴하기도 전에 자포자기에 이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부인하기는 힘들다. 조해진은 이 소설에서 현실적인 아픔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위무하려고 애썼다.
그 대상은 젊은 남녀 청춘 셋이다. 부동산 중개소 보조직원으로 취업해 빈집에 차례대로 머무는 민이라는 여자, 신용불량자로 폐허의 가구점에 사는 수라는 남자, 벅찬 노동으로 생을 지탱하는 연주라는 여자. 이들 셋이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과 서로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네번째 장편소설을 펴낸 소설가 조해진. 그는 “소설은 나에게 위로의 형식”이라면서 “소외된 사람의 시선을 통해 더불어 쓸쓸한 대상을 돌아보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
“가구점의 잔잔한 어둠, 그 어둠 속에 느슨히 스며 있는 깊은 정적, 그리고 그 앞에 앉은 사람을 성실하게 복원하지 못하는 흐릿한 거울의 불명료함, 민이 좋아하는 건 그런 것들이었다. 흐릿한 거울 속에서 흐릿한 자신이 흐릿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 흐릿한 생애가 상상됐다. …수많은 칸들이 연결된 기차처럼 각기 다른 생애들이 길게 이어져 전체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 엉키어 삼각관계를 만들어내는 건 조해진의 몫이 아니다. 각자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하지만 성사시키지 못하는 그 과정이야말로 작가는 냉정한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듯하다. 쓸쓸한 존재들끼리 서로를 껴안지 못하는 게 숙명이라면, 범람하는 뜨거운 픽션들은 말 그대로 모두 가짜다. 독자들이 끊임없이 현실에 없는 것들을 구하고자 하기에 그 픽션들은 여전히 승승장구하지만 끝은 늘 허무할 따름이다.
광화문에서 만난 조해진은 “아직까지는 소설은 위로라고 생각한다”면서 “나이가 더 들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위로를 찾는 사람들에 대해 써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위로라는 게 가짜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과 찾으려고 애쓴 뒤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다”면서 “외부에서 관찰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시각으로 서로를 보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네가 생각하는 여름이란 인간의 나이로 따지면 30대이고, 녹음이 무성하고 비가 내리고 태풍도 오는 다양한 풍경의 계절이라고 했다. 그 여름이 지나가는 풍경을 그네는 청춘의 피로한 현실로 환치시킨 것인데, 진정한 여름은 그들에게 이제 겨우 다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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