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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삼킨 내 가족… 삶의 희망 사라져”

입력 : 2015-09-04 18:43:34 수정 : 2015-09-05 03: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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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한 ‘꼬마 난민’ 아버지 참담
사진 fervidal31
“저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들이었어요. 아이들이 매일 아침 놀아달라며 저를 깨우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요.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끝나버렸습니다.”

터키 해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전 세계를 울린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이란 쿠르디의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40)는 3일(현지시간) 터키 보드룸의 한 영안실 밖에서 아들의 시신을 기다리며 BBC방송 등 언론과 만나 비통한 심경을 털어놨다. 장기간의 내전과 수니파 무장반군 이슬람국가(IS)의 위협에 지친 그는 스웨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꿈을 안고 밀입국 브로커에게 돈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1일 밤 쿠르디 가족을 포함해 23명의 난민을 태우고 그리스로 향한 작은 보트 두 척은 출발 직후 파도에 휩쓸려 전복됐다. 선장은 난민을 버린 채 헤엄을 쳐 도망갔다. 쿠르디는 “아내와 아이들 손을 붙잡은 채 뒤집힌 보트에 매달려 있었지만, 다섯 살 난 첫째(갈립)와 둘째(아이란), 아내가 차례로 죽어갔다”고 울먹이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터키 물라 주의 보드룸 해안에서 싸늘한 익사체로 발견돼 난민 문제에 관한 세계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세 살배기 아이란 쿠르디의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오른쪽)가 4일(현지시간) 시리아 코바니에 마련된 묘지에 아들을 묻고 있다.
코퀴틀럼=AP연합뉴스
사랑하는 가족을 여의고 홀로 남게 된 그는 모든 희망을 잃었다. 쿠르디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와 아이들을 묻어주고 그들 곁에 앉아 죽을 때까지 코란을 읽으며 고통을 떨쳐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란의 고모 티마 쿠르디가 전날 캐나다 코퀴틀럼의 자택 앞에서 조카들 사진(왼쪽이 아이란, 오른쪽은 형 갈립)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코퀴틀럼=AP연합뉴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아이란의 고모 티마 쿠르디도 2주 전 아이란이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른 일을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은 두 아이는 좋은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이란 가족을 캐나다로 이주시키려 했다는 그는 입국 신원보증 등에 필요한 비용이 모자라 다른 남동생 가족부터 초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별히 캐나다 정부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말해 전 세계를 비난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란의 비극적 죽음을 담은 사진은 사회관계망을 통해 널리 퍼지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유럽연합(EU)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이날 전화통화를 갖고 회원국이 난민을 의무적으로 분산 수용하는 쿼터제에 합의했다. 쿼터제에 반대해 온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아버지로서 (아이란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며 “영국은 도덕적 책임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시리아 난민 수천명을 받아들이겠다”고 공언했다. 유엔은 영국이 시리아 난민 4000명을 추가 수용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영국은 시리아 국경지역에 위치한 유엔 난민캠프에 있는 난민 중 가장 취약한 이들을 데려오는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데, 지난 6월까지 1년간 이를 통해 영국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은 216명에 불과했다. EU도 애초 4만명으로 잡았던 난민 수용 목표를 10만∼16만명으로 늘릴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시리아 난민 아일란과 형,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세 사람의 시신이 담긴 관을 자동차에 싣고 있다.
AP연합
지구촌 시민들도 모금펀드 개설 등을 통해 난민 돕기에 나섰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4일 “끔찍한 난민 위기에 스포츠와 올림픽 운동이 인도주의적 지원의 일부를 맡기 바란다”며 200만달러(약 24억원) 규모 펀드 조성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여전히 쿼터제에 반대하며 “기독교도 난민만 수용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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