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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칼럼] 광복 이후, 분노의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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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9-06 21:42:26 수정 : 2015-09-06 21: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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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분노’는 경제발전의 원동력 돼
혼란만 주는 ‘부정 분노’는 극복해야
1945년 광복 이후 70년이 흘렀다. 우리 모습을 돌아보면 분노가 팽배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묻지마 범죄, 데이트 폭력,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해 등 순간적인 억울함과 분노를 참지 못해 폭발하는 분노조절 장애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최근 한 중학생의 교실 방화사건 또한 어린 청소년까지 분노 폭발로 얼룩지고 있는 분노 사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분노’가 늘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광복 후 70년 역사 속에서 우리는 때로 긍정적인 분노에서 힘을 얻기도 했다.

광복 직후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의 여파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나라는 대혼란에 빠졌다. 사망·부상·행방불명된 한국 군인 수는 무려 98만7000명, 민간인 수는 80만4600명이었다. 이렇게 곳곳에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해야만 했고 가족의 생사도 알 수 없었던 그때도 사람들은 분노를 느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전쟁에 맞서게 했던 용기, 생존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함, 이는 생존에 필요한 분노였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동기가 부여된 것이다. 광복 후 약 15년 기간을 생존 분노 사회라 할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 생존하는 데 중요한 감정인 분노가 작동한 것이다.

1961년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출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이 추진되고 산업화가 본격화된다. 산업구조가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공업화의 발전 단계를 이루게 된다. 고도의 경제성장률과 함께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게 된다. 이 나라를 제대로 발전시켜서 좀 더 잘살아보자는, 내 자손에겐 더 풍요로운 삶을 남기고 싶다는 개개인의 분노 에너지가 원동력이 됐다. 바로 발전 분노 사회이다.

실제로 분노란 삶에 동기를 부여하고 더 진보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컴퓨터 화면에 물건(컵, 지갑 등)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얼마나 이것을 갖고 싶은지를 질문하는 실험이 있다. 이때 이 물건 뒤에 분노와 공포의 표정이 배경으로 깔리게 되는데, 이 표정에 따라 사람들이 이 물건을 가지고 싶은 정도가 차이가 났다. 같은 물건이라도 분노의 표정이 있을 때 더욱더 강렬히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분노를 느낄 때 더욱더 도전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 더 나아가려 한다. 이대로는 안 되겠고 내가 더욱더 노력해서 이 상황을 바꾸어 보려는 성취욕구가 생긴다. 개인을 변화시키는 잠재력으로 작용한다. 기적적인 경제부흥을 가능케 한 발전 에너지다. 1960년 이후 30∼40년간의 우리 사회는 발전 분노 사회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유엔의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던 나라가 이제 지원을 해주는 나라로 성큼 도약했다. 국가 위상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도 더욱 풍요로워졌다. 이런 풍요로운 물질주의 사회가 되면서 우리의 분노는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과의 비교로 인해 느껴지는 불공정함이나 억울함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분노는 남 탓 심리, 시기와 질투의 심리로 연결되면서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결국 서로 상처만을 남기고 있다. 한 나라를 일으켜 세운 ‘긍정 분노’보다는 이제 사회 전체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부정 분노’만이 양산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분노 에너지의 방향을 내 옆사람, 주위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 안으로 틀어보면 어떨까.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불행감을 느끼는 분노의 인생에서 벗어나 보자. 남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지금 내 상황, 내 기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솔직히 들여다보고 이를 충전하는 에너지, 자기를 충만하게 하는 에너지로 활용하자. 내가 좀 더 성숙해질 때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도 생겨난다. 바로 이러한 에너지가 앞으로 우리 사회를 더욱 성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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