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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기억’이 필요한 시대…이수경 작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

입력 : 2015-09-18 16:22:14 수정 : 2015-09-18 16: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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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피에타’.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최근 들어 작가들의 몸에 대한 탐구가 뜨겁다. 심리 치료 차원에서 접근한 ‘내면 아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최면을 통한 전생역행체험도 그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잘나가는 중견 여성작가 이수경도 최면을 통해 무의식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장면들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이것을 다시 회화로 재현해 내고 있다. 무의식 속에 등장하는 공간 배경은 대부분 장미로 뒤덮여 있다. 시간의 순서도 장소도 뒤죽박죽이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을 동시에 경험한다. 부족의 우두머리로, 하녀로, 승려로, 역모의 누명을 쓴 아비의 딸로, 용맹한 전사로, 노루와 곰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물거품으로서의 삶도 체험했다. 탄생과 죽음, 기쁨과 아픔을 차곡차곡 간직하고 이 생에서 다른 생으로, 또다시 그 이전의 생으로 역행을 거듭했다.

작가는 비로소 몸을 인식하게 됐다고 털어 놓는다. 그동안 그에게 미술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적용되고 표출되어 온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몸을 가진 존재고 그 몸이 있어 고통과 상처를 받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그 고통과 상처는 다시 몸을 통해서만 극복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곰곰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더 나아가 그는 정가(正歌)와 살풀이 춤까지 배우고 수련하면서 몸의 떨림이나 움직임에 집중하기도 한다. 춤사위에서 몸의 선과 호흡의 일치를 체험했다. 붓선과 호흡의 일치가 뭔지 알게 됐다. 몸의 깨달음이다.

그의 전생역행 체험은 흥미롭기도 하다. 첫 번에 접했던 공간은 악취가 진동했다. 저 멀리 집채만 한 쓰레기 더미도 보였다. 거기에는 부패한 동물들의 시체와 분뇨가 뒤범벅이다. 가까이 가보니 누더기를 걸친 한 노인이 커다랗고 투명한 수정 구슬 위에 앉아 가부좌를 튼 채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의 볼은 어린아이의 볼처럼 발그레하고 윤이 났다. 그의 머리 위에는 무지갯빛 후광이 넓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세상의 모든 더러움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는 그것을 응축시켜 어떤 약을 만들려고 한다. 복용하면 누구나 신선이 되는 약이다. 그리고 그가 지금 앉아 있는 수정 구슬은 백만개의 더러운 것들로 만들어 낸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체라고 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작은 구슬 하나를 건네 줬다. 받자마자 그 작은 구슬은 노인이 걸터앉은 그 수정 구슬처럼 커져 버렸다.

얼핏 들으면 동화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작가는 최면을 통해 전생의 역행을 체험하면서 몸의 호흡을 되찾고 자신에게 지워진 모든 무게를 떨쳐낼 수 있었다. 전생 역행을 거듭하면서 무의식 속에 더 깊게 들어가게 되고, 마주했던 장면들은 회화로 거듭났다. 작가는 동시에 아득한 시간 저 너머 언젠가부터 이어진 춤을 매개로 자신의 몸과 호흡을 되찾아 가면서 본디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영성(靈性)까지 환기시킨다. 그는 북한강 채석장에서 주운 돌에 금박을 입혔다. 금빛은 깨달은 자 부처의 성스러운 빛을 상징한다. 삼라만상이 부처라 하지 않았던가.

끝없는 윤회의 순환적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 몸에는 50억 년 전 초신성 폭발 때 만들어진 우주의 먼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일정한 방향도 목적도, 너와 나의 구분도 무의하다. 작가는 오랜 시간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 몸에 관해, 그 속에 존재하는 성스러움에 관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지극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는 한국의 바리공주, 중국의 서왕모 설화도 조형물로 탄생시켰다. 자신의 ‘내면 아이’이자 ‘생생한 기억 극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설화나 신화는 우리의 원형적 모습의 기억창고로 일컬어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기억이란 뮤즈(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학예의 여신)들의 어머니인 므네모시네(기억의 여신)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 했다. 그동안 우리는 ‘기억의 궁전’들을 교회와 사원, 이데올로기에 내줬다. 이 시대에 몸의 기억, 몸의 미학이 필요한 이유다. 12월20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서 이수경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02)3015-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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