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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아프간 사태 망령 되살아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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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02 02:56:31 수정 : 2015-10-02 02: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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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공습은 불길한 조짐…미·러 두 군사강국은 제로섬게임 관점 접고 국제사회 공조 통해 시리아 해법 강구해야 지구촌 열강 지도자들은 제로섬게임 관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현실주의에 토대를 두고 조언하게 마련인 참모들도, 학자들도 대체로 그렇다. 제로섬게임은 승자 득점과 패자 실점의 합계가 영(零)인 게임이다. 다시 말해, 자기 땅이 넓어질수록 상대 땅은 줄어든다. 일단 밀어붙일밖에. 열강들이 종종 힘자랑을 불사하는 이유다.

그런데 제로섬게임 관점은 반드시 옳은가. 그렇지 않다. 반증 사례가 허다하다. 1970년대부터 89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산악 지형을 피로 물들인 ‘아프간 사태’가 압권이다. 러시아의 전신인 구 소련과 미국은 당시 친소련 성향의 세속 정권을 세우느냐 여부를 놓고 암중 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구 소련도, 미국도 손에 쥔 소득은 없다. 둘 다 상처투성이가 됐을 뿐이다. 세상은 단순 도식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 것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구 소련은 78년 좌익 쿠데타로 들어선 친소련 정권이 힘을 잃자 이듬해 군 병력을 투입해 전격 침공했다가 낭패를 겪었다. 현지 저항은 예상보다 거셌다. 병력을 늘리고 첨단무기도 동원했지만 무력 진압은 쉽지 않았다. 미국이 무장 게릴라 조직인 무자헤딘에 무기·자금을 줄기차게 공급했기 때문이다. 구 소련 군대는 결국 3만여 인명 피해를 내고 89년 2월 철수했다.

미국도 웃을 수는 없었다. 얼마 안 가 테러리즘의 부메랑을 맞았으니까. 아프간은 구 소련군 퇴각 후 미국이 과잉 지원한 무기들로 중무장한 군벌들이 설치는 봉건제 분열사회가 됐다. 그 소용돌이를 정리한 것은 과격 근본주의 세력인 탈레반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96년 그런 아프간에 정착해 전력을 비축했다. 그 흐름이 9·11 테러로 이어졌다. 두 강국의 제로섬게임 집착이 재앙을 부른 결과였다.

돌연히, 아프간 사태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새 무대는 시리아다. 러시아는 그제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명분 삼아 시리아 공습을 개시했다. 89년 아프간 철수 후 26년 만의 군사 개입이다. 미국은 분기탱천이다. 공습 지역이 IS 근거지가 아니라 반군 주둔 지역이란 의혹도 즉각 제기했다.

미·러 양국 정상은 최근 제70차 유엔총회에서도 충돌했다. 역시 시리아 처방을 놓고서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서로 돌직구를 날렸다. 양국 입장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퇴진(미)과 지원(러)으로 상충하니 안 그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양국 정상회담 분위기도 싸늘했다. “냉전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란 촌평까지 나온다. 이제 러시아 공습이 시작됐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미·러 균열의 눈덩이가 어디로 구를지 모를 일이다.

시리아 비극을 최소화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제2의 아프간 사태를 막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아마도 지금 당장 정답을 내놓을 수 있는 전문가나 국가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중동 지정학은 그만큼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지구촌은 아프간 사태 때 정답을 몰랐고 시리아 내전 앞에서도 여전히 까막눈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최우선적으로 이런 현실적 제약부터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자기 주장만 고집할 계제가 아니다. 열린 가슴으로 머리를 맞대야 정답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고, 국제사회의 공조와 연대를 통해 안전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

제로섬게임 관점에 집착하는 고질을 버려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시리아 내전은 그 자체로 끔찍하다. 유럽·중동 난민 사태도 촉발한다. 국제 테러리즘 확산에 어찌 대응하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무거운 숙제도 안기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놓고 자국 영향력 확대, 자기 정치 기반 강화 따위나 노리면서 제로섬게임을 벌이는 것은 천벌을 받을 짓이다. 미국과 러시아만이 아니다. 지구촌의 유력국가는 모두 열린 가슴으로 시리아 의제에 임해 평화와 안정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지구촌이 그렇게 함께 나아가지 못한다면 어찌 될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어록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이런 어록이다. “무한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우주, 다른 하나는 인간의 어리석음. 그러나 우주가 무한한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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