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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부∼자 되세요!” 2001년 12월 카드회사 연말 광고에서 여배우가 외친 이 말은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하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한·일월드컵을 앞둔 국민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이었다. 여배우의 덕담과 상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부자 열풍이 몰아친 게 그 무렵부터다. ‘10억원 만들기’ 같은 금융상품이나 ‘한국형 땅부자들’ 같은 재테크 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부자 기준이 10억원 정도의 자산가였다. 당시 금리를 감안하면 은행에 넣어두고 매년 이자로 대략 5000만원을 벌 수 있는 수준이다.

서양에서 부자를 상징하는 백만장자(밀리어네어)도 우리 돈으로 12억원 정도를 가진 사람이다. 1719년 프랑스 스티븐 펜티먼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이 말을 썼다. 소비자물가지수를 감안하면 1900년의 100만달러는 지금의 2500만달러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화폐가치가 달라지다 보니 지금은 큰 부자를 일컬을 때 밀리어네어가 아니라 ‘빌리어네어’가 쓰인다. 재산이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 이상인 부자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 발표에서 22년째 1위를 지키고 있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재산이 760억달러로 추정된다.

KB금융경영연구소는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부자의 기준으로 분류해 2011년부터 매년 ‘부자 보고서’를 내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우리나라에서 10억원 이상을 소유한 사람은 18만2000명에 이른다. 10억원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직장인으로선 스스로 모으기 쉽지 않은 돈이다. 연봉 5000만원의 직장인이 20년 가까이 쓰지 않아야 하니 ‘노오력’을 포기한 채 노(No)력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10억원으로 부자 축에도 끼지 못하는 세상이다. 그제 KEB하나은행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자사 PB고객 1099명에게 물었더니 최소 자산규모는 평균 109억원, 가구당 월 지출액은 972만원이 돼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부와 지위를 얻는 데 인맥을 통한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면서 자녀의 인맥 쌓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답했다. KB금융 조사에서도 부자의 98%가 자산을 가족에게 물려주겠다고 했다. 재단을 만들어 자선사업을 활발히 벌이는 빌 게이츠처럼 마음이 따뜻한 부자를 기대하는 건 그저 흙수저들의 질투심인 것일까.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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