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6일 6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민일영 전 대법관은 퇴임사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가 고마움을 표시한 신 부장판사의 법원 내 공식 직함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다. 흔히 대법원 하면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인 대법관들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연간 3만8000건가량에 달하는 상고심 사건을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4명의 힘으로만 처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젊고 유능한 후배 판사들이 연구관 자격으로 대법관들을 보필한다.
김태훈 사회부 기자 |
연구관의 임무는 1차로 하급심에서 올라온 두꺼운 사건 기록을 요약하고 쟁점을 정리해 대법관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연구관이 대법관을 대신해 상고심 판결문 초안을 쓰는 사례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 대법원도 사정이 비슷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역대 대법관들은 물러날 때 예외 없이 함께 일한 연구관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양창수 전 대법관은 “연구관들이 없었다면 저는 부족한 자질과 능력으로 도저히 대법관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민 대법관이 쓴 ‘저의 머리가 되어준’이란 표현도 그저 겸양의 미덕만은 아닌 것이다.
이런 실정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법원 재판을 ‘대법관이 아닌 연구관에 의한 재판’이라고 깎아내리곤 한다. 전에 한 고등법원 판사가 “뭐 대법관들이 재판하나, 연구관들이 다 알아서 하지”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물론 대법관 1인당 사건이 연간 3000건에 이르는 현실에서 연구관이 대법원 재판의 일정 부분을 담당하는 이른바 ‘연구관 재판’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법관들이 체력과 시간의 한계 등으로 연구관들의 도움을 받을지언정, 재판 자체까지 연구관에 의해 좌우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 어느 전직 대통령도 “머리는 빌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1939년부터 1975년까지 36년 동안 미국 연방대법원을 지킨 윌리엄 더글러스 전 대법관은 연구관들에게 엄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하루는 한 연구관이 더글러스 대법관 명의로 된 판결문 초안을 몇 구절 지우고 자신의 문장을 집어넣었다가 들통이 났다. 그 연구관을 방으로 부른 더글러스 대법관은 따끔하게 타일렀다.
“대법관은 나고 자네는 연구관이야. 자기 본분을 잊지 말게나. 나중에 자네가 대법관이 되면 그때는 쓰고 싶은 대로 쓰게.”
김태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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